뮌헨 전쟁의 문턱에서를 보고나서: 국제외교는 냉정하다.
뮌헨 전쟁의 문턱에서를 보았다.
2차세계대전에 평소에 관심도 있었던 터라 그 전쟁의 불씨를 막을 수 있었던 마지막 기회라고 여겨지던 뮌헨에서의 회담을 다룬 영화라니 관심이 있을 수 밖에.
영화의 두 주인공은 옥스포드 대학 동문인 독일 외교부에서 일하는 '하트만'과 영국 총리를 보좌하는 '레가트' 사이의 이야기이다. 젊은 시절 패기 넘칠 때만 해도 나치와 독일우선주의를 지지하고 심취했던 하트만은 결국 독일에서 레가트와 우정이 깨지고 한동안 연락하지 않게 된다. (참고로 레가트는 신중하고 정적인 이미지라면 하트만은 격정적이고 동적인 캐릭터로 보인다.) 그러나 하트만은 나치가 집권하고 나서 히틀러를 증오하고 히틀러의 유럽 정복에 대한 원대한 계획을 알고 나서 이를 막기 위해 그와 관련된 비밀문서를 전달해주고자 한다.
당시 상황은 어떻게 해서든 전쟁을 일으키지 않으려고 했던 때였다.
끔찍했던 1차세계대전의 악몽은 벗어나질 못했고, 경제 공황 등으로 군사력에 집중을 기울일 수도 없던 시기였을 것이다. 반면에 히틀러는 독일 제국의 확장이라는 야욕을 달성하기 위해 야금야금 발판을 놓고 있는 모양새였다. 당시 유럽 정세의 키는 영국이 쥐고 있었는데 수상으로 취임한 체임벌린은 독일에 유화적인 입장이었고 유럽 내에 항구적인 평화가 정착되기를 희망하고 있었다. 독일은 이미 그러한 수상의 태도를 잘 알고 있었다.
독일은 한 발짝씩 앞으로 나아갔다. 오스트리아를 합병하고 그 다음 체코의 일부는 수데텐란트를 독일인이 많다는 이유로 자신들의 땅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는 지금에 들어서 푸틴이 요구하는 말도 안되는 주장과 다르지 않다. 1차세계대전 이후 국제적인 질서를 확립하기 위해 만들어진 국제연맹은 아무런 제재를 하지 못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와 영국은 전쟁을 일으키기 싫었고 그 결과로 땅을 내어줘야 하는 당사자인 체코도 없이 영,프,독,이 4개국 대표가 뮌헨에 모여 수데텐란트를 양도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히틀러 입장에서는 피 흘리지 않고 얻은 수완으로 인해 독일 내에서의 입지가 더욱 공고해졌고 그 때까지도 내부에 존재하였던 반대 세력들은 그를 제거할 기회를 놓치고 만다. 사라예보 총성처럼 2차 세계대전의 방아쇠는 여기서부터 당겨졌던 것이다.
이러한 뮌헨협정을 막기 위한 '하트만'의 사투를 영화를 보여주고 있다. 뮌헨에서 레가트를 만나고 영국 수상인 네빌 체임벌린과 독대할 기회를 얻는데까지는 성공하지만 이미 체임벌린의 입장은 완고하였고 하트만의 노력은 결국 수포로 돌아가게 된다. 그런 체임벌린은 협정에 서명하고 나서 이후 히틀러와 추가 면담을 통해 히틀러의 서명을 받은 문서를 '이 것이 우리 시대의 평화'라며 귀국길에 흔들었다. 불과 5개월 뒤 그 것은 거짓임이 밝혀졌지만. 전쟁은 코앞에 닥쳐오고야 말았다.
한편으로 다행히 중간중간 하트만이 과거 친구였던 나치 친위대 장교에게 덜미를 잡힐까봐 조마조마하기도 했지만, 결국 살아남아서 다행이었다. 그리고 하트만이 비밀리에 가져온 문서, 그 노력을 레가트가 이어받았다는데 위안을 삼았다.
뮌헨협정은 아무런 조건없이 평화만 외쳤다가 어떠한 참상이 벌어지는지 보여주는 사례로 늘 회자되고는 한다. 물론 근래에 들어서 체임벌린에 대한 재평가(?)가 있기도 하지만 상대의 의도를 읽지 못한채 나의 의지로만 관철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국제 정치의 엄혹한 현실임을 영화는 보여준다. 체임벌린의 평화라는 환상, 히틀러에 대한 무한신뢰라는 고집은 히틀러의 야욕을 눈가리개 하는 수단에 불과했다는 점은 얼마나 직관적으로 국제사회를 바라봐야 하는지에 대한 중요성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