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ort thought/From Book

종이올빼미: 누쿠이 도쿠로의 사회파 미스터리

잿빛노을 2023. 9. 18. 12:32


  누쿠이 도쿠로라는 작가는 일본의 잘 알려진 사회파 미스터리 작가로 '난반사', '후회와 진실의 빛' 등의 작품으로 유명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그렇게 유명세가 있는 편은 아닌 듯 하다. 그의 단편집을 모은 종이올빼미라는 책을 읽었다. 단편집이라고 했지만, 5편의 연작처럼 이루어졌기 때문에 하나의 장편 소설 같은 느낌이 있다.

  이 책 역시도 사회파 미스터리 작품이라면 꼭 다루는 주제인 '사형제도'의 존폐에 대한 이야기가 주된 내용이다. 시작부터 이 작품의 전제는 살인을 저지른 자는 사형을 당한다는 법률을 기반으로 시작된다.

  첫 작품 보지도 말고, 쓰지도 말고, 말하지도 말지어다. 에서는 디자이너가 손가락과 눈, 혀가 모두 도려내진채 발견되는 잔인한 범죄가 발생하지만 단지 죽이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목적이 불순하고 방법이 잔혹한 범죄에 극형을 내리지 않는 것이 많는가에 대한 의문을 던진다. 결국에는 중대재해처벌법 등의 사형제도를 보강하는 법률이 생겨나게 되는 식으로 끝맺음을 한다. 사형제도를 떠나서 반인륜적인 범죄를 저지르는 범죄자에 대해서는 현실적으로 내릴 수 있는 최대한의 형벌을 내리는 것이 맞지 않을까 생각했다.

  두번째 작품 새장 속의 새들에서는 전 작품을 관통하는 살인과 사형제도의 전제조건에 대한 경직성을 강조하였다. 별장에 놀러간 친구들 중 한 여학생이 겁탈을 당할 위기에 처하자 남학생이 구하기 위해 우발적인 살인을 저지른다. 이런 배경을 알고 있던 친구들은 살인을 저지른 친구를 두둔하고 범죄를 은폐하려고 한다. 그러나 마침 발생한 지진으로 별장은 고립되고 설상가상으로 발생하는 살인. 종국에 밝혀지는 범인은 처음에 우발적인 살인을 저지른 남학생으로서 이친구는 법학생으로 '살인 = 사형'이라는 분명한 철칙을 가지고 있었으며 본인이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방조하는 친구들을 용서할 수 없었기에 또다른 살인(?)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약간 정신 나간 발상이 당황스럽지만 그의 경직적 사고를 통해 '살인=사형'이라는 전제조건에 작가는 균열을 내려는 시도를 한다.

  세번째 작품 레밍의 무리 에서는 우리나라 사람들을 표현할 때 일컫는 '냄비'근성 모습이 일본 사회에도 비슷하게 있다는 것을 작가의 시선으로 느낄 수 있었다. 제목에서처럼 레밍인 단체로 득달같이 달려드는 습성이 학교폭력 가해자들에 대한 의로운 사적제재가 정당하다는 여론이 들불처럼 퍼지는 현상을 비추며 이 것이 과연 맞는 것인지가 근본적인 이야기의 흐름이었다. 학교폭력 이슈와 사형제도에 대한 이야기를 적절하게 혼합해서 표현한 것이 맘에 들었다. 어쩌면 뻔할 수 있지만 마지막에 드러나는 일종의 반전 장치까지 마음에 들었던 단편이다.  

  네번째 작품 고양이는 잊지 않는다는 레밍의 무리와 연속적으로 맞닿아 있는 내용이다. 살해된 누나의 복수를 위해 남동생은 누나를 죽였을 것이라고 짐작되는 남자를 쫓아 자살로 위장하는데.. 결국 남동생은 애꿎은 한 사람을 죽인 셈으로 사적 제재의 허상을 꼬집고 있다. 한 편 남동생과 그의 연인은 사형 찬반론자로 엇갈려 그에 대한 각 의견이 대화에 조금 나타나는 것이 흥미롭다.

  마지막 작품 종이올빼미에서 작가의 입장은 이른바 클라이맥스에 다다른다. '살인=사형'이라는 다소 현실적이지 않은 설정 아래 이야기를 풀어내긴 했지만, 작가는 결국 범죄자가 범죄를 저지르더라도 본인의 행위가 옳다고 생각한 채 사형을 당하는 것보다는 반성할 여지를 주는 것이 맞는 것이라고 애인을 잃은 작곡가 남성의 입을 빌려 말한다.

  쪼금은 뻔한 주제를 다루는 것 같아 임팩트는 약했지만 이야기 자체는 재미있고 중간중간 반전요소도 볼만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