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크니는 영국본섬 바로 위에 위치한 섬으로
오크니 본섬을 중심으로 많은 유인/무인도가 둘러쌓고 있다.
오크니로 가려면 세가지 항로가 있는데,
내가 이용하게될 Scrabster - Stromness와 St. Margaret Hope - Gill's bay의 차량을 실을 수 있는 페리와
John o'groats - Berwick은 인원만 이용 가능한 항로이다.
보통 마지막 뱃길은 인버네스를 통한 투어용으로 주로 쓰이는 항로이고,
원래는 나도 운전하기 피곤할 것 같아 오크니 당일 혹은 2박3일 투어를 계속 검색해봤지만,
코로나로 인해 늦게 시작하는 투어 프로그램에 도저히 시간을 맞출 수 없었고,
돈은 비싸지만 차량을 실고 (20 + 62파운드) 가는 방법을 택하기로 했다.
이로서 스코틀랜드 북쪽에 있는 셰틀랜드와 오크니는 다 들러본 셈
하드리아누스 방벽 투어를 갔을 때, 가이드랑 오크니랑 셰틀랜드 이야기를 잠깐 했었는데,
두 지역은 각자 특색이 있을 정도로 다르다고 그러면서
"Orkney is Orkney, Shetland is Shetland"
이러던 것이 기억 났다.
아마도 역사적으로도 노르웨이, 스웨덴의 북유럽 문화권에 속해있다가,
결혼 지참금이라는 명목으로 스코틀랜드에 자연스럽게 흡수되어 있던 섬들이기 때문에
원래 스코틀랜드 게일인들과는 다른 문화를 유지한 것일 수도 있겠다.
게다가 북쪽은 점점 인구밀도도 낮고 살기도 척박한 곳이기 때문에
중앙정부에서 신경이나 쓰겠나 싶기도 하다.
스크랩스터에서 페리를 타고 가면 한가지 볼만한 것은 Old man of Hoy라고
사암층으로 구성된 약 136m의 높이의 영국에서 가장 커다란 시스택 (sea stack)이다.
Hoy섬에 건너가서 트레킹을 해서 볼수도 있지만 그것은 너무나도 시간이 오래 걸리고
이동하는 교통수단도 없다시피 하기 때문에
조금은 먼발치이지만 바다에서 보는 풍경도 볼만하다.
스카이섬에서 보았던 올드맨 오브 스토랑 연관지어보면 올드맨이라는 것은
보통 높고 날카롭게 솟은 봉우리, 우리나라로 치면 '선돌' 같은 지형에 저절로 붙이는 표현인 것 같다.
호이섬의 아름다운 해안절벽을 감상하다 차디찬 바닷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올드맨 오브 호이를 보내고나서야 부리나케 선실로 들어와 몸을 뎁혔다.
오크니 섬은 이것보다 더 추운걸까...
오크니 섬의 2번째로 큰 마을인 스트롬니스에 도착하니, 해는 뉘엿뉘엿 저물어가고 있었다.
사람이 없는 스트롬니스 메인골목인 Victoria Street에 가로등을 보고 있자니,
지난 업헬리아를 위해 방문했던 셰틀랜드 러윅의 새벽 모습이 떠올랐다.
Victoria street는 중심골목인 것 치고는 구불구불했는데,
알고보니 바닷가에 연해있어서 바다 조류에 맞게 건물을 짓다보니
자연스럽게 저렇게 도로의 모습을 띄게 되었다고 한다.
저녁을 먹으려고 찾아봤지만 이미 다 문을 닫아버리고 말았다.
하는 수 없이 슈퍼마켓에서 저녁거릴 해결하고
다음 날 여행을 위해 계획을 잘 정리하고 잠에 들었다.
이 곳은 이미 겨울이라는 것이 느껴질 정도로 B&B에서는 히터가 잘 나왔다.
아침에 주인할머니가 맛있게 차려주는 아침을 먹고 있는데,
할머니가 오늘 날씨가 좋다며 잘 여행하고 오라고 할 정도로 햇빛이 쨍쨍하였다.
서둘러 아침을 먹고 차고에서 차를 빼내려고 하는데 이럴수가...
갑작스레 하늘은 어두워지고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실질적으로 오늘 하루 오크니 본섬을 다 돌아봐야 하는데
계획이 다 틀어지는건가 싶은 마음이 들었다.
먼저 어디로 가야할까 허둥지둥 하다가 아무생각없이
가장 위에 끄적였던 Brough of Birsay로 향했다.
이 곳은 조수간만에 따라 길이 열리고 닫히는데
마침 만조상태여서 건널 수 있겠지 싶었지만
이렇게 비가 쏟아지는데 가서 걸어다닐 수나 있을까 싶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그 앞에 있는
Earl's palace에 도착하자마자 비가 그쳤고,
역시 하늘은 날 버리지 않았다는 흡족한 마음으로 밖으로 나섰다.
기쁜 마음을 먼저 와서 구경 중인 다른 여행객과 나누고 백작의 궁전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이 궁전은 16세기 메리 여왕의 이복남매인 Robert Stewart라는 Orkney 백작의 거처였다고 한다.
하지만 올리버 크롬웰의 1651년 스코틀랜드 침공 때 이 곳을 점령하면서 피해를 입었고,
이 후에 방치되어 금세 버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걸 떠나서 오크니 섬에서도 가장 구석에 이렇게 자리를 잡은 걸까 생각이 들었다.
이어서 Brough of Birsay로 이동하였다.
바닷가와 마주치니 날씨는 맑았지만 북대서양의 강한 바람이 차 문을 열수 없을정도로 불어닥쳤다.
만간조 상태여서 그런지 섬으로 향하는 길은 잘 열려 있었다.
섬은 6세기 때부터 원주민인 픽트인들의 거주지로 활용되었으며,
이후 노르만들의 침공 때 그들을 위한 거주지로 이용되기도 하였다고 한다.
지금도 섬 안에는 그들의 흔적이 남아있는데, 픽트인들이 남긴 비문 같은 것도 찾아볼 수 있었다.
도착했을 당시에는 일부는 잔뜩 자란 풀숲에 뒤덮혀 열심히 복구작업 중이었다.
안내문을 읽으니, 오크니의 중심지는 커크월 (Kirkwall)이 생기기 전에는 바로 이 곳이었다고 한다.
노르만들이 살 때도 이 부근이 오크니 섬의 중심지였다고 한 걸 생각하면
왜 아까 Earl's palace가 이 곳에 건립되었는지 추측해볼 수 있었다.
거주지 뒤편으로 섬 뒤쪽으로 진정한 대서양을 마주보러 걸었다.
30분 정도 걸으면 등대가 있는데, 등대 뒤편으로 해안절벽과 맞닿은 바다가 보인다.
원래는 이 곳도 퍼핀을 비롯한 새들을 관찰하러 오는 곳이라고 하지만
철지난 방문은 남아있는 제비갈매기 정도만 볼 수 있을 뿐이었다.
예약해놓은 스카라 브레 (Skara Brae)를 볼 시간이 조금 남았던 데다가
이근방은 음식점은 없는 것 같아서 조금 아래쪽에 위치한 마윅 헤드 (Marwick Head) 쪽으로 차를 돌렸다.
이 곳도 탐조지로 유명한 곳인데 만의 얕은 바닷물 위로 바다오리들이 둥둥 떠다니고
갈매기 떼들이 날아다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자연보호구역 주차장에 차를 대니 낯익은 짠내가 몰려왔다.
주차장 바로 앞에 Fishing hut이라고 화살표가 되어있길래 짠내를 피할 겸
바닷가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바닷가 옆으로 드러난 돌들은 층층이 판이 쌓인 듯이 신기한 모습을 뽐냈다.
한 20여분 정도 걸으니,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Fishing hut이 보이기 시작했는데
어부들이 장비 등을 넣을 때 필요한 창고 같은 것이고 복원한 것이라고 한다.
이 창고 뿐만 아니고 울타리벽이나 집 등을 생각해보면 다 바닷가의
층층이 쌓인 저런 돌을을 떼다가 쌓은 것 같기도 하다.
돌아가려고 하니 다시금 비가 막 쏟아지기 시작했다.
스카라 브레로 바로 갈겸 차로 허둥지둥 달려가며
수많은 새들과의 작별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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