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이 지기 전에』라는 책을 읽고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라는 표현은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저술한 투키디데스로부터 시작되었으며
기존의 패권국인 스파르타가 신흥세력인 아테네의 부상에 두려움을 느끼고 전쟁을 일으켰다는 것을 빗대어
새로 부상하는 세력이 지배 세력을 대체할 정도로 위협적일 경우 발생하는 자연스럽고 불가피한 혼란 상황을 뜻한다.
결국 여기서 '함정'이라는 표현은 선택해서는 안되었을 '전쟁'을 선택했다는 점과
그 선택으로 인하여 양 측 다 모든 것을 잃고 다른 도시국가에게 패권을 넘겨주었다는 점이다.
요즘 용어로 따지자면 양쪽 다 치킨게임을 해서 망했다고 표현하는 것도 적절하지 않을까 싶다.
여기서는 전쟁으로 이끄는 주요 동인을 이해관계, 두려움, 명예로 설명한다.
이해관계: 아테네의 끝없는 팽창이 스파르타 동맹국을 잠식하여 위협이 됨
두려움: 지배세력의 두려움은 종종 착시 현상을 불러일으켜 위험을 과장하고
반대로 새로 부상하는 세력의 자신감은 가능한 일에 대한 비현실적 기대를 갖게 함
예로, 코르키라-코린토스 분쟁에 아테네가 개입하게 되는데 이는 그리스 세계 2위 해군력을 가진
코르키라 함대가 펠로폰네소스 동맹으로 넘어가게 되면 아테네의 해상우세를 빼앗길 수 있다는 두려움으로
비롯되었고, 반대로 스파르타는 동맹국인 코린토스를 돕지않으면 동맹관계가 깨질 수 있을 것이라는
'연루의 딜레마'에 이끌려 전쟁에 개입하게 되었다.
명예: 국가가 마땅히 받아야할 인정과 존중에 관한 확신 또는 자존심
펠로폰네소스 동맹의 유지는 스파르타 인들의 명예와 정체성을 확립 시켜주는 것이었기에 동맹을 깨뜨리려는
아테네의 행위를 좌시할 수 없었다.
덧붙여 나는 책을 읽으며 전쟁으로 가지 않을 것이라는 잘못된 믿음(오인)도 지적해보았다.
우선, 아테네가 코르키라의 편을 들어준 것은 적절한 중도노선을 택한 것이라고 판단하고 이 행위가 전쟁으로 발전되지 않으리라는 기대가 있었다. 또한, 페리클레스는 스파르타의 동맹국이었던 메가라에게 무역 봉쇄와 비슷한 조치인 메가라 법령을 시행하였는데 그들은 이 행위가 스파르타에 대한 도발이 아닌 필요한 절충안이라는 식으로 해석하였다.
(이 때, 스파르타는 메가라를 방기하기는 하였음..)
그렇다면 '사라예보의 총성'으로 시작되었다고 여겨지는 1차 세계대전과 투키디데스의 함정과 어떻게 연관이 있을까?
1. 이해관계 측면
보불전쟁으로 독일이 통일하고 난 후 지속적으로 세력이 확장되었고, 이를 기존 패권국인 영국과 프랑스는 불안해함
특히, 1900년대 초반 독일의 해양전략으로 상호 해상 군비증강이 현실화되었고, 결국 독일은 1910년대 들어서 대륙 내
지상전으로 노선을 변경하였지만 이후 3국동맹 VS 3국협상으로 세력이 재편되게 됨
2. 두려움 측면
영국, 프랑스는 보오전쟁, 보불전쟁을 모두 승리하여 유럽대륙 내 세력을 넓여나가는 독일의 성장을 두려워하였다.
흥미로운 점은 3국협상, 3국동맹으로 세력이 재편되며 독일은 러시아의 성장을 두려워했다는 점이다.
프랑스, 러시아로부터 양면전쟁을 강요받아야만 했던 독일은 자구책으로 슐리펜 계획이라는 프랑스 우선 공격을 수립
하였지만 그 것의 대전제는 러시아의 6주의 동원기간이었으며, 이는 한창 군사개혁 중이던 러시아가 철도 건설을 완성하게 되면 계획이 무용지물이 될 것이 뻔했기 때문에 그 전에 공격을 해야했다.
또한, 당시에 만연했던 공격 우위 전략은 선제공격의 유인을 높이는 데 한 몫했다.
3. 명예 측면
사라예보 사건 이후 전쟁 발발 직전까지 행동들이 양 측 세력의 위신을 세우는 전략으로 진행되면서 강도는 점차 세짐.
대표적으로 베트맨 수상의 '계산된 위험'전략으로 이는 조절된 강압전략으로 오스트리아, 독일의 위신을 세우는 명목으로 군비경쟁, 공갈, 살라미 전법 등으로 전쟁위기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려 막판에 극적으로 물러서거나 물러서게하여 최대한 유리한 결과를 얻도록 하는 자세를 보였다.
사라예보의 총성 이후 오스트리아 입장에서는 세르비아에서 자신의 황태자가 살해당했음에도 분명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는 것은 제국의 위신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한 편, 영국 입장에서는 전쟁 참여에 부정적인 여론이 형성되었지만 자신들이 중립국으로 만드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벨기에가 침공 당하자 자신들의 명예가 실추되었다고 생각하고 참전을 결심하게 되었다.
4. 오인 측면
서로 아무리 강도를 올려도 전쟁으로 가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는 bluffing strategy (엄포 게임)이 점차 심화되었는데, 강도를 올리는 것이 진짜 전쟁으로 간다기 보다 자신들의 의지를 보여주는 수단으로 착각한 정책 결정자들의 오판이었다.
1) 빌헬름 황제의 오스트리아 세르비아 침공에 대해 돕겠다는 백지수표
2) 그에 힘을 받은 오스트리아 선전포고, 그들은 이 행위 자체의 심각성을 모르고 일종의 외교적 조치로 생각
3) 오스트리아는 부분동원, 독일은 총동원도 안한 상태인데도 자신들의 동원체제의 불리함을 타개하고자 내린 러시아의
총동원령은 세계대전으로 향하는 쐐기를 박아줌
4) 외교적 강도를 높여도 독일은 영국이 참전하지 않을 것이라는 이상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으며,
책 제목과도 같이 빌헬름 황제는 전쟁을 하더라도 단시간 내 끝날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음
"낙엽이 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올 수 있다."
연루-방기의 딜레마 측면에서 바라본 세력관계
독일: 유일한 유럽 내 동맹국이었던 오스트리아의 지원 요청에 대해서 과거 요청을 거절한 사례가 많기에
백지수표를 주지 않게 되면 방기될 수 있을 것이라는 불안감
프랑스: 사라예보 사건이 오스트리아-러시아 충돌로 비화되자 이에 연루될 것을 걱정
포앵카레 - 동맹으로부터 방기될 가능성을 원치 않음
비비아니 - 원치않는 연루의 위험을 걱정
영국: 중립국 벨기에의 침략으로 인해 연루됨
덧붙여 한 가지 더 지적할 점은 민군관계의 중요성이다.
스파르타 내 매파들에 의해 스파르타가 전쟁 결정을 내렸듯이
전쟁을 부르짖는 군부를 통제하는 민간 정부가 없었기에 전쟁이라는 선택을 강요당할 수 밖에 없었다.
슐리펜계획 자체가 민간지도부와 협조된 계획이 아니고 단순히 군인 한 사람이 기안한 내용임에도 그 계획에
무조건적으로 추종한 독일이나, 부분동원이 기술적으로 불가함을 강조하여 총동원을 유도한 러시아 군부도
전쟁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이는 2차세계대전을 선택한 파시즘 국가들(독일, 일본)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내용.
바람직한 민군관계은 무책임한 전쟁의 방아쇠를 당기는 것을 막게해줄 하나의 수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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