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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rt thought/생각나는대로

오펜하이머

오펜하이머 Oppenheimer 영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신작 오펜하이머를 저녁 시간을 내서 보았다. 인터스텔라, 테넷 등을 제작한 워낙 유명한 영화감독의 작품이지만 먼저 본 사람들의 후기로는 극과 극이어서 볼까말까 고민을 하였었다. 특히 놀란의 작품은 아이맥스를 기준으로 만들기 때문에 용아맥에 가는 것이 좋지만 항상 예매 전쟁이고.. 다른 영화와 마찬가지로 3시간이라는 긴 러닝타임도 걱정되긴했지만, 결론적으로 보고 나서는 상당히 추천해주고 싶은 영화였다.

  오펜하이머의 생애를 중심으로 세 개의 시간대를 오가며 영화는 진행된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왔다갔다하는 것이 집중이 되지 않고 번잡하다고 표현하는데 영화 막판의 서스펜스를 올리는데는 좋은 선택이었던것 같다. 특히, 마지막에 오펜하이머 청문회와 그의 정적이라고 할 수 있는 스트로스 청문회의 장면을 서로 오가면서 마치 비슷한 시간대에 있었던 것처럼 느껴지는데, 사실은 오펜하이머 청문회는 1954년에, 스트로스 청문회는 1959년에 진행되었다. 물론 청문회 속의 발언들은 실제로 녹취된 내용이 그대로 표현된다. 예를 들어 오펜하이머 청문회에서 오펜하이머를 두둔하는 친우 들의 발언, 그리고 스트로스 청문회에서 그에 반하는 힐이라는 과학자의 발언 등은 영화의 긴장감을 절정으로 치닫게 하는 것 같다.

  역사적 사실에 의하면 오펜하이머는 6주만에 양자역학을 독일어로 강의를 할 수 있을 정도로 공부하는 천재적인 과학자로서의 면모를 보인다. 이런 학술적 분야에서의 성취 뿐만이 아니라 '맨해튼 프로젝트'라는 몇천 명의 인원과 20억 달러의 예산, 3년이라는 기간, 대형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이뤄낸 조직관리자로서의 능력도 뛰어난 사람이었다. 워낙 다방면으로 뛰어난 모습을 보여준 그였기에 그만한 자부심과 자신감은 뛰어났을 것이다. 그런 면들이 주변과 충돌을 일으켜 프로젝트와 전쟁이 끝나고 난 뒤 청문회 등으로 수모를 겪기도 한다.
  한 편으로 그는 인간다운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의 연인이기도 하였던 진 테트록이 1944년 우울증으로 자살로 생을 마감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그는 황야 한 가운데서 비통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그 슬픔을 혼자 다 짊어지려는 듯한 자세를 보인다. 그를 찾은 아내 키티의 도움으로 그는 다시 일어서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완수한다. 그를 '파괴의 신'으로 만들어준 원자폭탄은 전쟁을 종결짓기 위한 마음으로 만들었었다. 그렇기에 폭약 투하장소를 결정할 때나 폭약을 터뜨릴 때도 최고의 효과를 낼 수 있도록 조언하였다. (이런 사실은 영화에는 표현이 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영화에서 드러나듯이 일본에 원자폭탄이 투하되고 구토를 하는 과학자의 마음처럼 수십만의 사람이 사망했다는 사실 뒤로 연단에서 성공적인 투하를 자축하는 연설을 하는 오펜하이머의 가치관을 완전히 비틀어버린다. (이 지점에서 많은 사람들이 바닥에 발을 굴러 엄청난 소리를 내고 관중들의 얼굴이 폭탄에 의해 벗겨져 나가는 듯한 묘사 등으로 표현을 해낸다.) 결국 원자폭탄 이상의 무기 개발에 회의적으로 바뀌고 소련과 냉전으로 진입하는 미국에 필요했던 수소폭탄 개발에 반대하는 자세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것은 과학자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문제이다. 오펜하이머는 자신이 개발한 무기로 인해 수많은 사람이 죽자 괴로워했다. TIME지 표지모델이 되고나서 트루먼 대통령의 초대로 백악관에 간 그는 환담 자리에서 자신의 손이 피를 묻힌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여 트루먼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다. 트루먼 입장에서는 과학자는 단순히 무기를 개발하여 정책 결정자에게 수단을 준 것 뿐이고, 그 것에 대한 투발명령은 트루먼 본인이 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펜하이머는 그러한 결과에 대한 책임 역시 본인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오펜하이머 청문회도 일종의 '순교자'의 마음으로 했던 것이 아닐까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