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서가를 둘러보던 중 요즘 들어 지정학 분야에서 꽤나 흥미로운 작가이자 할 수 있는 피터자이한의 책이 눈에 띄여 바로 집어서 조금씩 읽고 있는 중이다. 제목만 보면 요즘 국제 정세와 참 맞아 떨어지는 느낌은 왜일까, '각자도생'의 세계라니. 그의 전작인 '셰일 혁명과 미국 없는 세계'와 이 책은 어느정도 이어져 있다고 하지만, 결국 미국이 세계질서를 유지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순간 어느 나라가 이를 대신할 수 있을 것이며 혹여나 그러한 질서 자체가 붕괴한다면 어떠한 현상이 발생할 것인가 하는 미래의 상상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다. 자이한은 셰일 혁명으로 인해 미국은 에너지 자급자족이 가능하여 고립주의로 회귀하고 이미 지난 4번의 정부도 그렇게 하고 있다고 언급한다. 그들이 만들어 놓은 질서가 무너지는 순간 지금껏 유지되던 에너지와 식량의 공급선이 지대하게 영향을 받을 것이며, 우리나라도 그에 자유롭지 않을 것이다. 이미 이번 전쟁으로 말미암아 에너지를 기반으로 하는 경제권이 분리되어가는 조짐이 보이고 있다. (* 러시아, 터키, 이란의 3자 회담 등은 미국의 국제체제에서 벗어나 별도의 블록을 만들려고 한다.)
코로나 시대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일어나기 전 이 책이 쓰였지만, 어느정도의 생각들은 지금 시대에 들어서도 유효한 점은 있다. 특히 미국과 영국이 어떻게 해서 세계의 패권을 쥐었는지 그 유효조건들에 대해서는 짚어볼 만한 점이 있다고 생각했다. 미국의 경우에는 회유책으로서 1. 모두에게 물리적인 안보를 보장하며,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에서 직접 피를 흘리며 동맹국들에게 이에 대한 신뢰감을 주었다. 2. 모든 나라의 해상 안전을 보장할 수 있을 정도의 강력한 해군력을 보유하고 있다. 3. 무제한 시장접근을 허용하여 미국의 시장경제에 누구든지 참여할 수 있게끔 하였다. 심지어 적인 구소련마저도. 4. 세계 어디서나 활용되는 기축통화 '달러'를 유지할 능력이 되어야 한다. 라고 밝혔다. 반면에 영국의 경우는 위협책으로서 1. 바다라는 자연장애물로 둘러쌓여 있으며 주변국들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워 그러한 고민이 없이 자체적인 생산과 발전을 할 수 있었던 천혜의 지리적 위치, 2. 막강하고 유연한 해군력을 통해 거꾸로 고립되지 않고 세계 곳곳으로 국력을 투사할 수 있었다, 3. 산업혁명이라는 역사적 진보를 가장먼저 달성하여 발생한 상대적인 기술적 우위를 통해서 제국을 전 세계로 확장하여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자이한은 미국이 사라진 세계 질서에 영향을 줄 만한 강대국과 BRICS 국가 일부에 대해서 각각 장을 편성하여 나름의 평가를 하고 있다. 덕분에 각 나라의 지리적 특성으로 말미암아 얻어지는 정치, 경제적 장단점 들을 쉽게 살펴볼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일리있는 것은 인구에 관련한 내용이었다. 러시아나 독일의 인구 통계를 들면서 현재 상태에서 변화가 없다면 이대로 망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면서 왜 러시아가 지금 전쟁을 일으켰는지 유추해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자이한은 '소련 이후 거의 붕괴된 출생률에 알코올 중독, 심장병, 폭력, 결핵, HIV 등으로 폭등한 사망률'로 인하여 철저한 인구 붕괴에 직면하고 있다고 밝힌다. 더욱이 러시아 같은 나라는 과거에서부터 부족한 점을 인력을 갈아넣어 해결해왔었기 때문에 인구감소는 중요한 문제이기도 하다. (병사 갈아넣기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계속되고 있다.)
이어서 저자는 서술을 이어나가면서 중국은 겉보기에는 상당히 발전되어 차기 패권을 다툴만한 것처럼 보여지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으며 끝없는 융자가 끼어 기초경제가 부실한 중국은 미국의 역할을 절대로 대신할 수 없을 것이며 오히려 과거에 그랬듯이 여러 조각으로 나뉠 것으로 신랄하게 비판적인 논조를 보이고 있다. 특히 앞서 제시한 미국, 영국 모델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그러한 조건들을 중국은 절대 달성할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드넓은 지상의 국경을 맞대고 있는 지리적 환경의 제약과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는 내부적 문제들 (* 베이징과 상하이의 대립: 얼마전 코로나로 인한 상하이 전면 통제 등으로 내부 불만이 표출될 수도 있음)이 산재하다. 또한 성공할 것만 같았던 일대일로 정책을 저자는 미국과 비교하여 차이점을 설명할 때 크게 와닿았다. 시장경제에서의 자유로운 접근을 통한 미국의 방법과는 다르게 중국은 융자라는 형식으로 개발도상국들에게 도로, 항만 등 사회간접시설을 무리하게 짓게 한 후, 빚더미에 허덕이게 하여 오히려 지금은 반발을 사고 있다. 이러한 방식으로 해상교역로의 주요 거점 항구를 조차하는 형태로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했으나 오히려 반중정서만 확대된 상황이다. 중국으로부터 융자를 받은 스리랑카의 경우도 현재 국가부도상태에 이르렀고 대통령은 도망을 가버렸다. 또한 저자는 군사적인 측면에서 중국은 제1도련선까지의 영향을 줄 수 있는 전력만을 가지고 있을 것이며, 특히 해군력은 일본보다도 낮게 보고 있다. 이번에 세번째 항공모함을 건조하였던 중국이지만 '속 빈 강정'이라는 시선이 있고 특히 훈련 수준이 낮고 실전을 경험하지 않았기 때문에 약할 것이라는 전망은 어쩌면 자이한의 주장이 맞을 것 같다.
그러나 자이한은 다분히 미국의 입장에서 책을 집필해서 그런지 몇몇 표현들은 다소 거친 느낌이 있었다. 이를테면 중국의 말로가 국가 해체라는 전망 등은 중국이 미국 대신 패권을 차지하길 원치 않는 시선이 깔려 있는 듯 하다. 미국이 없으면 아무 해결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미국 중심주의적 시각이 깔려 있는 것은 미국 학자의 시각에서는 어쩔 수 없는 도리인듯 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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