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내가 한장의 사진에 갑자기 끌려 등산을 선택한 스노도니아 공원으로 가는 날이다. 그 사진은 바로 캔틸레버 락(Cantilever rock)이라고 하여 넓은 돌이 끝쪽에 지지하여 반대쪽이 붕 떠있는 그런 곳이다. 빠르게 다녀올 생각에 500ml 물과 먹을 것 약간을 슬링백에 넣고 길을 나섰다.
오고나서부터 교통편을 찾다보니 문제점이 많았다. 특히 오늘의 등산 경로도 버스를 찾다가 사실 포기 직전에 많은 부분을 감수하고 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낸 것이었다. 경로는 아래처럼 다녀왔는데, 버스를 총 세번 타야했으며 (어제 갔었던 베드겔러트로 가는 경로도 포함), 하산한 후에 버스가 없어서 가장 가까운 곳까지 걸어가기 위해 추가로 8km를 걸어야만 했다. 하지만 이 것이 Glyder Fawr를 횡단해서 등산할 수 있는 최적의 루트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별 방법이 없었다.
어제 왔던 곳을 똑같이 지나쳐가면서 스노도니아의 심장 속으로 빨려들어가고 있었다. 버스는 어느새 Pen-y-pass라는 곳에 도착했는데, 이 곳이 스노도니아 정상과 Glyder Fawr 사이에 고개에 위치한 부분으로 유스호스텔 같은 것도 있는 등산객이 꽤 붐비는 곳이었다. 이 곳이 버스로 올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이라고 한다. 내리면 정상으로 가는 길은 훤하게 잘 보이는데, 반대로 내가 가야할 길은 도무지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당황스런 마음을 숨길 새도 없이 성큼성큼 걸어가서 진입하라고 만들어둔 문으로 들어가서 어플에 나와있는 길을 체크해가며 길을 알아보았다. 하지만 20여분 정도 걷다보니, 더이상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 눈앞에 보이는 고지로 일단 간 후 능선을 따라서 가면 길이 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였다. (이 때부터 등산 초심자의 무리수가 연발로 터지고 만다.)
불안한 마음이 항상 등 뒤를 쫓아오고 있었지만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그런 것마저 잠시 잊게할 정도였다. 넓다란 들판에 아무도 없는 이 곳이 그저 온 세상에 나뿐인건가 하는 착각마저 일으키게 할 정도였다. 한참 걷다가 고지 아랫부분으에 도착하였는데, 멀리서는 야트막하게 보였던 그 산은 섣불리 다가가기 어려운 돌산으로 다가왔다. 플랜 B가 없었던터라, 네발로 낑낑대며 걸어올라갈 방법 밖에 없었다.
어찌저찌 한고비를 잘 넘기고 나니 다시 새로운 들판이 눈앞에 펼쳐졌다. 올라갈 수록 더욱 황량한 느낌을 자아냈는데, 나무는 보이지 않고 온통 돌뿐이었다. 여기서 등산 중에 식사를 하는 일행을 만났는데, 할아버지가 내가 아무것도 준비 안해온 것 같아보였는지, 힘내라고 에너지(설탕) 캔디 비슷한 걸 주셨다. 그거 없었으면 진짜 마지막에 못걸을 뻔 했는데, 할아버지를 만난 건 천운이었다.
사람이 지나간 흔적이라고는 찾아보일 수 없는 들판을 구글맵 하나와 대충의 감만으로 지나쳐 능선에 올라서니 지옥의 부엌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었다. 삐죽하고 날카로운 돌들이 사방으로 뻗혀 있어 위압감을 주는 곳이었다. 돌밭을 무심코 지나다 보니 당초 목표로 했던 캔틸레버 락으로 가는 길이 도무지 보이지 않았다. 하나 둘씩 우연히 마주치던 등산객들도 보이지 않아 점차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아무도 돌아다녀도 중간 중간 도무지 지나갈 수 없는 낭떠러지만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러다 길을 잃으면 어떡하지, 다시 돌아가야 하나라는 체념을 하면서 능선을 다시 올라가던 중에 찾아보지 않던 반대쪽 크트머리에 사람들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직감적으로 저 곳에 내가 가야할 길이구나 느끼고 가보니 역시나, 경사가 심한 곳이긴 해도 충분히 지나갈만한 길을 발견하였다.
우여곡절 끝에 캔틸레버락에 도착하였다. 사람이 둘 셋 보이고 간단히 사진만 찍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가벼운 마음으로 간단히 싸온 점심을 먹으며 시간을 보냈다. 멀리서는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사진 각도만 잘 맞추면 공중에 떠있는 돌 끝에 있는 것처럼 사진을 찍을 수 있는데, 어떤 각도로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달라지는 우리의 가치관과도 비슷하다고 느껴졌다. 능선 반대편의 하산 코스 역시 끔찍했다. 약 경사 6-70도의 돌산을 사족보행으로 약 1km 정도 가야했는데, 이럴 때 다시금 오르막길 보다 내리막길이 힘들다는 그 말이 실감난다. 아무튼 단독산행이기 때문에 정신줄을 꽉 잡고 엉금엉금 내려갔다. 이후 코스는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걸어갔지만 거친 등반으로 인한 체력저하와 물부족 등으로 고전하다가 드디어 공원 입구로 도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앞으로 7-8km 정도 버스가 있는 마을까지 걸어가야 했기에 입구에 있던 조그만 마켓에서 수분 및 당분 보충을 한 후 이동하기로 결정하였다. 베데스다까지의 길은 수많은 양들과 함께하는 하이킹 같았다. 내내 옆으로 목장이 이어졌는데, 풀뜯어 먹고 한가로운 오후의 망중한을 즐기는 양들과 달리 어서 쉬고 싶다는 마음만 급한 나의 발걸음은 너무나도 대조적이었다.
하루의 마지막: 방고르에 도착 후 오늘 고생한 나 스스로를 위해 라멘집에 가서 보신을 해야겠다 하고 갔지만, 왠 끔찍한 혼종 잡탕면(일본식+동남아식)이 나와 입맛만 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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