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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United Kingdom

Isle of Skye 2 Nights 3 Days (2) 스카이섬 여행

여행정보를 알려준다는 목적보다는 저의 여행기록을 작성하는 공간입니다.

여러분이 공유하는 기록을 읽으면서 도움이 된다면 좋겠습니다.

 

19년 4월 여행

여행 이틀차는 온전히 스카이섬을 음미할 수 있는 날이었다. 아침을 든든하게 만들어 먹고 충실하게 돌아다녔는데 큰 틀로서의 경로는 아래와 같았다.

 

퀴랑 → 킬트락/밀트폭포 (트레킹) → 포트리 (점심) → 올드맨스토 (트레킹) → 숙소 (저녁) → 네이스트등대 (석양 감상)

스카이섬을 대표하는 트레킹 코스인 퀴랑은 2박3일 스카이섬 투어에서는 대부분 빠지게 된다. 아무래도 진정한 퀴랑을 느끼려면 단순히 주차장에서 잠깐 스쳐가기에는 아쉽고 다른 일정을 넣다보면 트레킹할 시간은 항상 뒷전으로 가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양쪽을 모두 경험해본 사람으로서 렌트카를 이용하는 것이 아무래도 스카이섬을 즐기는데 최고이기 않을까 싶다. 올드맨 스토를 경유한 동쪽 도로를 이용할 줄 알았는데 퀴랑 주차장으로 내비게이션을 작동하니 서쪽에 있는 우이그 (Uig)를 경유하라고 한다. 생각지도 않게 우이그를 들르게 되었는데, 마을을 조금 지나 야트막하게 올라가니 어느덧 바닷가에 고즈넉히 자리잡은 한가로운 어촌 마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주차장에 차를 못댈 것 같아 일찌감치 출발하였으나, 아랑곳없이 다들 내리기로 하고 사진을 찍어본다. 

퀴랑에 도착하니 오전인데도 불구하고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갓길에 겨우 차를 대고 트레킹을 나섰다. 퀴랑은 두 개의 봉우리 같이 솟은 커다란 암봉 사이를 향해 걸어가는 코스이며, 그 끝에 언덕에 도착하게 되면 어느샌가 저멀리 바다가 한 눈에 펼쳐지는 것이 백미이다. 걷다보니 떠오르는 것은 4월의 스코틀랜드는 날이 맑아도 절대로 방심해서는 안되는 것이 바람이라는 것이다. 특히 섬인 이곳에 계곡과 같은 지형적 특징이 맞물려 거센 맞바람이 다가왔다. 혹시몰라 챙겨온 목토시와 비니, 그리고 선글라스가 톡톡히 제 역할을 해준 덕에 다른 친구들과 달리 그나마 덜 힘들었다. 준비가 덜 되어 힘들어했던 친구들도 이 풍경에 기분이 좋아지고 함께 커다랗게 둘러싸인 돌들을 따라 마침내 바다가 보이는 곳까지 도착하니 상쾌한 기분에 트레킹의 참맛을 깨달은 것 같았다. (사실 차로 대부분 온 셈이니 그렇게 힘든 코스는 아니지만) 그리고, 왜 퀴랑이 스카이섬의 하이라이트라고들 하는지도 알게되었다. 돌아오면서 길을 벗어나 따로 또 같이 사진을 찍었는데 역시 대자연의 한가운데 있어서 그런데 양들이 설치한 지뢰밭을 피하느라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한국에 돌아가기 전에 다시 한번 이 길을 밟을 수 있을까.

 

퀴랑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킬트락과 밀트폭포를 보고 식사를 하기로 결정했다. 아무래도 올드맨스토를 보고 점심을 먹기에는 시간이 너무 늦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킬트 (Kilt Rock)은 이름 그대로 스코틀랜드의 전통의상인 킬트의 치마자락과 비슷하게 생겼다고 해서 이름이 붙여졌다. 주차장에 차를 대니 입구 쪽에 날이 좋아서 그런지 전통의상을 입고 백파이프를 연주하는 사람도 있었다. 절벽쪽으로 다가가니 킬트락과 그 앞에 바닷가로 바로 흘러가는 밀트폭포가 있었다. 정방폭포와 같지만 아래서 보는 정방폭포가 훨씬 압도적인 모습을 자랑하는 것 같았다. 약간의 트레킹을 하였기에 점심 겸 휴식을 위해 포트리로 돌아와 각자 다른 음식을 시켜 나눠서 먹은 뒤, 나와서 커피나 아이스크림 등을 즐기고 올드맨스토에 나갈 채비를 하였다. 올드맨 스토는 사실 도로를 지나가면서 충분히 볼 수 있기도 하지만 왠지모를 욕심에 트레킹을 하기로 결심하였다. (뒤늦게 알고보니, 이 곳도 퀴랑과 나중에 이야기할 네이스트 포인트와 함께 3대 트레킹 중 하나로 국내 여행사에서 홍보가 되어 있다.) 같이 가기로 한 1명과 바늘처럼 솟은 돌봉우리를 향해 걷고, 나머지는 차 안에서 쉬기로 결정하였다. 이미 시작지점이 고지대여서 경로가 오르내림이 반복되던 퀴랑과 달리, 해안선 부근에서 시작하는 이 트레킹은 끝없이 오르막 뿐이었다. 주변에는 고목들의 무덤이 가득했는데, 이 곳 날씨에 견디지 못해 이렇게 된건가, 한편으로는 그런 자연을 이겨내고 푸릇하게 자라난 이곳의 나무들의 생명력 또한 남다르겠구나 싶었다. 일반적인 트레킹 코스가 어느덧 평평한 평지로 바뀌어있었다. 아직 기둥까지는 한참인데, 고개를 드니 햇빛이 바스라진 돌기둥은 그림자를 저편으로 남기고 순간 눈앞에서 사라졌다 다시 나타나고는 했다. 같이 온 친구에게 저 스토를 직접 손으로 만지자고 하고 급한 돌경사를 네 발로 함께 오르기 시작했다. 등 뒤로는 차가운 바람이 휘감아 아래로 끌어들일 것만 같았고, 준비가 안된 친구를 데리고 올라갔기 때문에 그를 안전히 끝까지 올려보내야 겠다는 무언의 책임감이 마음 속에 가득하였다. 20여분을 그렇게 올랐을까 나즈막한 함성과 함께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하였다. 그 정상에서 바라본 섬은 너무나 아름다웠고, 이리 올라오지 않았다면 반드시 후회했겠구나. 많은 사람들이 발길을 돌리던 그 곳에서 멈추지 않은 우리에게 축하의 눈빛을 서로 보내며 기억에 남을 사진을 찍었다. 올라왔던 길로는 다시 내려갈 엄두가 나지 않아 스토 뒤편을 돌아서 그나마 덜 위험한(?) 곳으로 겨우 내려오고 나서야 아래 기다리고 있는 친구들이 떠올라 부리나케 걸어갔다. 마침내 주차장으로 돌아오니 그간 휩싸였던 긴장과 흥분이 가라앉고 피곤이 몰려왔다.

숙소로 돌아와 석양을 보러가기 전 이른 저녁을 먹고 녹초가 된 몸을 정비한 후 네이스트 포인트로 차를 몰고 갔다. 계획보다 늦은 출발로 급한 마음으로 사라지는 햇빛을 향해 달려갔다. 여러번의 석양 감상을 위한 운전 경험이 있지만 이때만큼 강렬하게 눈에 내리쬐는 햇빛이 있을까 싶다. 정확히 알맞은 시간에 도착한 네이스트 포인트는 끄트머리에 있는 등대까지는 가기 무리지만 그걸 배경삼아 지는 석양이 너무나도 아름다운 곳이다. 이미 사진고수들로 몇몇 스팟은 점령되어 있었다. 수평선을 보기 위해 질퍽거리는 땅을 지나 바닷가와 맞닿은 절벽에 도착했다. 이 세상의 색깔이 변하는 Magic Hour, 아름다운 풍경과 함께 빡셌지만 풀코스로 즐긴 스카이섬의 하루를 마무리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