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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Japan (Hokkaido)

홋카이도 여행 2일차: 눈과 양고기의 한가운데서


  홋카이도에서 둘째날이 밝았다.
  난생 처음 이용해보는 토요코인 호텔 조식은 생각보다 흡족했다. 야끼소바와 미소시루를 즐겨먹었는데 생각보다 주먹밥은 퍽퍽하기만 해서 아쉬웠다. 오늘은 홋카이도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던 유빙을 보는 날이기 때문이 일찍 나섰다. 사실 그 전날부터 계속 유빙의 이동상황을 체크했었지만, 내려올 낌새가 보이지 않았다. (유빙 체크는 일본 공식 홈페이지 또는 여객선 오로라 호의 인스타그램을 확인하면 알 수 있다.)

아바시리 역 앞 동상


여객선을 타러 가기 전 호텔 앞에 위치한 역에서 다음 행선지인 아사히카와를 가기 위한 기차를 예매하러 방문하였다. 그러나 그 곳에서 맞닥뜨린 충격적인 사실! 아침 날씨는 이렇게나 화창한데 오후부터 강설예보가 있어 오후 기차는 운행이 전면취소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바시리의 일정을 대폭 축소하고 다음 목적지인 아사히카와로 가야만 하는 것이다. 아바시리가 사실은 유빙 원툴인 동네이긴 하지만 만화 '골든 카무이'로 유명해진 아바시리 형무소라든지 '무한도전 오호츠크 특집'에 나와서 알려진 키타하마역 등 나름 계획한게 많은데 일부는 포기해야만 했다.

  여객선 터미널로 막연한 유빙에 대한 기대를 하면서도 버스 속에서 Plan B를 고민해야했고, 아쉽지만 유빙여객선을 탄 후 빠르게 형무소를 관람한 후 역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계획을 세웠다. 그나마 시내 버스 안에서 어젯밤 어두워서 보지 못했던 아바시리의 풍경을 눈에 담으며 이동해보았다. 날은 화창해도 여전히 거리는 한산했다.

  여객선 터미널에 도착했다. 역시나 예상대로 'no drift ice today'.. 그래도 이걸타러 여기까지 온건데 그냥 갈 수는 없었기에 바로 출발하는 다음 배를 탑승하였다. 2월로 접어드는 홋카이도였지만 오전에는 바람이 선선하여 뱃놀이 유람을 한다치면 딱 좋은 날씨였다. 페리는 항구를 빠져나가는데 군데군데 기대한 수준은 아니었지만 유빙으로 커져가는 얼음의 줄기를 만나볼 수는 있어서 그걸로 위안을 삼아야했다. 페리는 근처의 노토로 곶 부근까지 운행을하고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날씨도 나쁘지 않아 페리 안을 돌아다니다가 매점에서 다른 사람들이 찾아 마시던 파란색 사이다 병을 한병 사서 기념으로 사진을 찍어보았다. 맛은 합성향료가 가득 들어간 느낌이지만 추억으로만 간직하려 한다.

페리 탑승
색깔이 맘에드는 사이다
그나마 만난 유빙(?)


여객선터미널로 돌아오면 바로 그 곳에서 아바시리 감옥 박물관 가는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형무소 인근에는 유빙체험관, 박물관 등 여러 볼거리들이 모여있긴 한데 그 중에 가장 봐야할 것은 아바시리감옥박물관이다. 이 감옥박물관은 1980년대 까지 형무소로 쓰였었고, 지금은 시내 인근으로 이전을 한 상태이다. 이 지역에 형무소가 생겨난 유래는 메이지 유신 이후 혼란한 정국 속에서 새로운 교정시설에 대한 수요가 생겼고 당시 미개척지에나 가까웠던 홋카이도에 이를 세우게 되었다. 미개척지에 세움에 따라 형무소에 복역하는 죄수들인 각종 개척사업에 동원되었다고 한다. 겨울에 극도로 춥기도 한 극한 환경속에서 강제노동에 형무소 생활은 곧 악명을 떨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쇼와의 탈옥왕'이라는 시랕토리 요시에와 같은 사람이 등장하기도 했다. (이 인물은 앞서 말했든 골든 카무이에 등장하는 시라토리의 모티브가 된 인물이기도 하다.)

  1시간도 채 남지 않은 상태로 역으로 가는 버스가 돌아오기 때문에 한 바퀴는 돌아야 하지만 몇몇 주요한 건물만 보고 서둘러서 돌아보기로 하였다. 처음 입장을 하게 되면 다리를 건너게 되는데 다리 이름이 가가미바시라고 부르고 우리말로 하면 '거울다리'라고 한다. 다리 아래로 연못이 있는데 여기에 맑게 흐르는 물을 거울 삼아 자신을 반성하라는 뜻이 담겨있다고 한다. 박물관 내의 건물들은 목재 건축물인데 1909년에 방화 이후 다시 지어진 그대로의 건물들로 일본에서도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목조 형무소 건물이라고 한다. 그 중에서 가장 메인은 아바시리 형무소 감옥 및 중앙 초소로서 방사형응로 뻗어있는 형무소 중앙에 이를 한 번에 감시할 수 있는 중앙초소의 모습을 보니 원형감옥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던 제러미 벤담의 '판옵티콘'의 개념을 조금  차용한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시설에 700명이 수용되었었다. 감옥박물관에는 많은 수감자들을 수용하기 위해 만든 커다란 솥단지 같은 것들도 눈여겨볼만했다. 시간이 조금이라도 더 있으면 느긋하게 돌았을텐데 아쉬운 마음뿐이었다. 입구와 출구는 서로 달랐는데 출구가 정류장하고 더 떨어져 있던터라 힘을 내서 걸어보았다. 이래놓고서 출구의 매점에서 마그넷과 홋카이도 맥주를 부랴부랴 사서 버스에 탑승했다. (아무래도 이 곳은 1시간 반 정도의 시간을 두고 여유있게 감상하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골든 카무이의 향기
엄청난 밥솥(?)
죄인 흉내
형무소내 가장 널널한 사역 중 하나(?)
형무소 모습
빛이 드는 모습이 신선하다.


 제시간에 호텔로 돌아와 맡겨놓은 짐을 끌고 역으로 갔다. 아내에게 먼저 걸어가서 역 티켓 발권을 부탁하고 혼자서 눈밭에 2개의 캐리어를 이끌고 가려니까 너무 힘들었다. 특히 쌓인 눈밭 위를 걷다보니 바퀴가 헛도는 느낌이랄까.. 지친 마음으로 역내에 있는 도시락 전문점에서 드디어 고대하던 에키벤을 고를 수 있었다. 연어알과 게살 에키벤을 각각 샀는데 짭쪼름한 것이 생각보다 심하긴 한데 느끼할 정도는 아니어서 든든한 한끼였다. 아내는 아침부터 바쁜 일정이라 피곤했는지 금세 잠에 들었다. 나는 눈보라를 휘날리며 달리는 열차 뒤편에 나있는 차창 너머로 보이는 멀어지는 철로를 보면서 감상에 잠겼다. 절반이 넘게 비어있는 객차는 고요했다. 가끔씩 근처에서 마주치는 사슴 등의 동물을 볼 때마나 탄성 아닌 탄성이 관객들에 의해 터져나오는 정도랄까. 동물이 나타나면 기차는 경적소리를 내며 이를 내쫓는데 무료함을 내쫓는 기차여행의 즐거움이다. 입이 심심한데 깜빡하고 간식거리를 챙겨오지를 못했다. 열차 시간표를 체크하는데 엔가루 역에서 열차의 방향을 바꾸기 때문에 조금 여유가 생기는 것을 발견하고 정차하자마자 플랫폼에 있는 자판기에서 알포트 초콜릿과 음료수를 구입하였다. 덕분에 여로에서 달달한 초콜릿을 즐기며 아사히카와로 향했다.

다시 도착한 아바시리역
방문 기념 촬영지
다이세츠 기차
즐겁게 먹은 에키벤
열차는 그렇게 아사히카와로 달린다.
아무생각없이 고른 것 치고 맛이 좋았다.


  아사히카와에 예상외로 일찍 도착하게 되었는데 그 것의 장점은 그만큼 아사히카와에서의 저녁을 즐길 시간이 늘어난다는 장점이었다. 그러나 역에 도착하자 흩날리는 눈보라에 의해 어딜 돌아다니는 것이 쉽지 않음을 깨닫게 되었다. 역시. 눈의 도시 아사히카와이다. 하지만, 목표로 했던 징기스칸 집을 방문할 여유가 충분히 되어 저녁에는 이 곳만 가기로 결정했다. 다행히도 숙박을 역 앞에 잡아놓았는데 기차역과 호텔 사이로 지붕이 있으며 바닥이 열선이 깔려 있는 길을 걷다보니 아바시리에서만큼은 힘들지 않았다. (한창 하츠코이를 보던 때여서 주요 촬영장소인 아사히카와 주요 스팟을 찍어놓았었지만 걸어서 다닐 엄두가 나질 않았다.)

  호텔에 체크인을 한 후 고대하던 징기스칸을 먹으러 발걸음을 옮겼다. 호텔에서 도보로 15분 정도 걸으면 '다이코쿠야'라는 징기스칸 집이 있는데 삿포로에 있는 어떠한 징기스칸 집보다도 여기가 낫다고 하는 쉽게말해 징기스칸 먹으러 이곳에 방문하는 사람이 있다는 정도로 유명한 곳이라길래 기대에 한 껏 부풀었다. 걸으면 눈을 찌를 듯이 날리는 눈발을 걸어 또 걸어 도착해다. 유명한 집이라서 그런지 주변은 조용한데 이 곳만 불이 훤하게 켜져있고, 역시나 만석이여서 맞은 편의 대기실에서 기다려야만 했다. 아내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잔뜩 지쳐있었지만 최고의 징기스칸을 먹겠다는 일념 하나로 40분 정도를 버텨 드디어 입장하였다.

  

아사히카와역 도착
눈이 쏟아지기 시작.
눈의 도시 아사히카와
다이코쿠야 메뉴판
다이코쿠야 메뉴판
끝내주는 소리
계속 넘어간다
생맥주가 빠지면 섭섭


  다이코쿠야에서 기분 좋은 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어느새 눈이 잦아들었다. 배도 든든하고 에너지 넘치는 상태에서 날씨마저 좋으니 기분이 좋아 편의점에서 푸딩이나 과자 등을 사서 들어가는 길 다시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정말 알 수 없는 도시이다.

먹고 나니 날씨가 개었다.
아사히카와 밤거리의 모습
다시 눈이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