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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rt thought/From Book

아르키메데스는 손을 더럽히지 않는다

 

  일본 추리소설의 다작왕 히가시노 게이고에게 추리소설의 길을 인도해준 책이라는 표지를 보고 무턱대고 읽은 일본 추리소설이다. 앞에서 주지시키듯이 1970년대 일본의 풍경을 담은 내용이기 때문에 그 시대의 감성과 가치관이 많이 담겨있어 현재의 생각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순수하면서도 어리석은 느낌이 드는 내용이다. 

 

  '아르키메데스'가 제목에 들어간 이유는 갑작스레 생을 마감한 미유키가 죽기 전 아버지에게 말했던 유언이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사랑하는 고교생 딸이 임신을 한 것도 모자라 난관임신으로 죽게되어 그 아이의 아버지가 누군지 복수심에 불타는 아버지에게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아르키메데스가 그녀의 죽음과 무슨 연관이 있을까 원인을 쫓아가 보는 것이 이야기의 시작이다. 

 

  여기에 하나의 죽음이 더해지며, 두 개의 죽음에 접점에 위치한 야규에게 저절로 수사의 시선이 쏠릴 수 밖에 없다. 이 때 등장하는 고전적인 시간표 트릭들과 각종 이야기들을 풀어 헤치면서 두 이야기의 진실에 점점 다가가게 된다. 

 

  1960-70년대 시기는 일본의 전공투를 빼놓고 이야기하기 어렵다. 소설도 그런 맥락과 결국 맞닥뜨려 있다. 순수한 이상향의 세계를 만들어보겠다고 시작된 운동은 어느새 변질되어 처음에 세웠던 그런 목적은 온데간데 없이 구호와 폭력만이 남아있었다. 소설의 시점은 그 학생운동의 끝을 보여주었던 연합적군 사건 등이 발생하기 직전이지만 우리가 그 헛된 결말을 잘 알고 있듯이 소설에서 만들어진 고교생들의 '아르키메데스' 모임의 헛된 모습도 노무라 형사의 시선으로 잘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스포주의: 미유키의 아버지는 건설업자로 마을 사람들의 일조권을 침탈하는 건설행위를 해와 주민들의 반감을 사고 있었고, 자연스레 야규와 나이토, 엔메이 등이 주도한 아르키메데스 모임의 공격 대상으로 정해진다. 이 때의 방식이 소중한 딸인 미유키를 겁탈하여 아이를 갖게하는 기상천외한 방식이라는 것이다. '모든 것을 합법적으로' 처리하는 그 모임의 논리로 정해진 방식이라지만..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고 이런 점이 더욱 일본스러운 느낌을 전달해준다. 게다가 아버지에 대해서 반감이 있던 미유키도 이에 동의하여 결행된 것이지만 이런 행위들 이면에서는 본 목적과는 달리 남녀 간의 연애 감정에 의해 촉발된 것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더욱 어리석다고 말하고 싶다.)

 

  마지막에 다나카게 엔메이에게 말하는 이 부분이 더욱 그 잘못된 생각을 표현하고 있다. 다이너마이트를 만든 노벨, 곧 영화로도 나오는 오펜하이머 등이 과학기술을 발전시켰을 뿐 그것을 만들었다고 비난받아야 하는가? 문제는 그것을 만든 이용한 사람들의 영역이 아닌가? 

 

  "아르키메데스는 로마 군인을 죽였어. 그는 살인 기계를 발명했을 뿐 실제로 조작한 사람은 시라쿠사 병사들이다. 그러니까 아르키메데스는 손을 더럽히지 않았다고 할 수 있어? 나는 그가 명예와 이익을 초월한 학자라는 전설을 믿지 않아. 너처럼 '미와 고귀함을 갖춘 것에 대해서만 포부를 둔다'라는 사람들이면 아무리 히에론왕이 명령하더라도 살인기계를 만들지 말았어야지.." 

 

  "피차 이제 동화를 믿을 나이는 지났잖아? 더러운 세상에는 손을 더럽히며 맞서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