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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카 코타로의 책을 처음 접해 보았다. 상당히 재미있는 이야기꾼이라고 들었던 그의 작품 중에서 가장 대표작인 마왕을 스타트로 읽어보기로 하였다.
소설은 2부로 나뉘어 형제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에서 다룬다. 1부는 형 안도의 시선으로 2부는 동생 준야의 시선으로 진행된다. 특이하게도 이 형제는 남다른 초능력을 지닌 설정이다. 안도는 나의 생각을 다른 사람이 말할 수 있게 말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고, 준야는 특정 확률 아래로는 무조건 승리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두 사람은 자신들의 능력을 갑작스럽게 발견하고 그 초능력의 한계는 어디까지인지 시험을 해보기도 한다. 안도의 경우는 일정 거리 이내에서 능력을 발동시킬 수 있으며, 준야는 1/10 확률 이내에서만 승리를 할 수 있다.
내가 만약에 이러한 초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당연히 내가 가지고 있는 가치관 하에서 나에게 유리한 조건으로 사용할 것이다. 준야처럼 특정한 확률에서 무한하게 승리할 수 있다면 마권을 계속 사서 돈을 불릴 수도 있다. 그래서 1부에서 안도의 행동을 통해 작가가 말하려고 하는 부분이 강조가 된다. 더 나아가 2부에서 준야는 정확히 어떠한 행동을 하겠다고 마무리짓지는 않은 열린 결말로 끝나지만 안도의 생각을 물려받아 대결을 이어나갈 것을 밝히기도 한다.
그 둘의 상대는 일본의 정치가 이누카이이다. 고루하고 타락하기까지 한 일본의 정치가들과는 달리 이누카이는 확실한 입장을 거침없이 밝히며 국민들의 지지를 얻기 시작한다. 안도는 그 모습이 이탈리아를 한 때나마 장악했던 무솔리니와 겹쳐보이는 것을 경계한다. 정치계에 등장한 신성 이누카이는 일본 평화헌법 9조를 개정하여 일본도 군대를 가질 수 있다고 헌법에 명시하고자 한다.
그는 이 파시즘이라는 것을 정연히 일렬로 세워진 수박씨의 모습을 바라보고 섬뜩함이라고까지 표현한다. "파시즘이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명확한 대답은 없다. 적어도 나는 잘 모른다. 20세기에 탄생한 독자적인, 반지성적이며 본능적인 정치체계라고 풀이해 봤자 결국 그것인 아무것도 뜻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다. 굳이 말하자면 파시즘이란 바로 '통일되어 있는 것'이라는 의미이다. 애당초 파시즘의 프랑스어 어원인 'faisceau'는 '몇 개의 총부리를 다발로 묶어서 세우는 일'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즉 갖다 붙이자면 이 '수박씨의 줄'이 아닐가?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생리적으로나 본능적으로나 저항감을 느끼게 하는 이 섬뜩함은 파시즘이 갖는 공포와 닮지 않았을까? 생각해, 생각해"
안도는 이 생각을 클럽 지배인인 '두체'라는 사람과 대화하기도 한다. 파시즘을 공포로 여기는 안도에 대척점에 있는 이 두체도 역시 초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며, 안도가 특별한 재능을 가지고 있는 것을 간파하게 된다.
"모든 일의 대부분은 반발에서 비롯되지, 예를 들면 액션영화가 유행하고 나면 말랑말랑한 애정영화가 유행을 하고, 드라마 시대가 끝나면 논픽션 시대가 오지."
"자칫 사람은 자신이 얻은 것을 자신만 얻은 것이라고 착각할 수 있다는 말이지요"
두체는 실제 이누카이의 추종자로 그의 활동을 자신의 초능력을 이용하여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사람이다. 안도는 생각 끝에 이누카이에게 다가가지만 결국 두체에 의해 희생된다.
2부는 안도의 갑작스런 죽음 이후 5년이 지난 준야의 시선으로 시작된다. 그의 여자친구였던 사오리와는 이제 결혼한지 3년이 되는 해. 평범한 삶을 살아갈 줄 알았던 안도는 사오리와 가위바위보를 계속 이긴다는 것을 발견하고부터 자신의 특별한 재능을 발견하게 된다. 그 순간부터 준야는 형 안도가 입버릇처럼 해왔던 생각하는 일을 하기 시작한다. 5년이 지난 시점에서 이누카이의 정치적 입지는 더욱 커졌고 이제 곧 헌법 9조에 대한 국민투표를 하는 상황.
"이 나라 사람들은 계속해서 분노하거나 계속해서 반대하는 데 약해, 처음에는 난리법석이 나더라도 두 번째 이후에는 흥이 싹 가라앉는다는 거지... 그 어떤 것이든 처음에는 주목하고 매스컴도 떠들어대. 하지만 그게 한 번 지나고 나면 두 번째 이후부터는 순식간에 열기가 가라앉아. 질린 것도 아니고 마음이 식은 것도 아니야. '그만하면 됐지 뭐. 그 잔치는 벌써 한 번 했잖아' 하는 피로감 섞인 공기가 떠도는 거야."
준야는 형 안도를 따라 '생각하라'의 의미를 계속 되짚으며 읽는 우리에게도 그 메시지를 계속 전달하고 있다. 흘러가는 대로 그러려니 되는 것은 없다. 조금은 통쾌한 결말이 이루어지지 않아 마무리가 아쉽긴 하지만, 그럭저럭 나도 생각을 해야 한다라고 메시지를 준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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