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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사회파 추리소설의 명작으로 알려진 '13계단'을 드디어 읽어보았다. 여기서 13계단이라 함은 중의적 표현으로서 사형이 집행되기 전까지 거쳐야 할 법무부 장관의 결재 등 13개의 단계를 거친다는 표현과 더불어 사형 집행을 기다리고 있는 사카키바라 료의 꿈 속에 갑자기 등장하여 '원죄'(짓지 않은 죄에 의해 처벌을 받는 것)를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가 되는 것이기도 하다.
처음부터 사형수 방의 음산한 풍경을 살벌하게 묘사해낸다. 교도관의 발걸음에 죽음이 눈앞으로 다가오는 것 같은 격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구역질을 하는 사형수들의 모습은 죽음을 앞두기 전 또다른 지옥을 보는 것만 같다. 이 곳에서 사카키바라 료는 다가오는 죽음의 발걸음을 거부하고 어떻게든 '원죄'를 해결하려 했지만, 몇 번의 항고는 실패한 상태. 이를 해결하지 위해 익명의 후원을 받고 은퇴를 앞둔 교도관 난고 쇼지와 상해치사로 살인을 저질렀으나 가석방 중인 미카미 준이치가 사건의 진실을 알아보려고 한다.
난고 쇼지와 미카미 준이치도 각자의 사정이 있다. 한 때 유능한 교도관이었으나 사형 집행을 2번 하고 나서 사형 제도에 대한 의문을 품기도 한 그는 오래된 별거 생활로 가정도 피폐해져가는 그의 삶을 이번 일로 회복시키고 오래된 꿈인 베이커리를 고향에 여는 것을 꿈으로 하고 있었다.
미카미 준이치는 2년 전 술집에서 사무라 쿄스케와 다툼을 하다 상해치사를 저질러 감옥에 수감되었었다. 가석방 이후 돌아온 그는 가족들이 피해자 가족들에게 보상을 해주느라 빚더미에 짓눌러 있는 것을 본 후 참담함을 느끼고 난고 쇼지의 제안에 응하여 '원죄'를 회복하기 위한 여정에 나선다.
왜 난고 쇼지는 미카미 준이치를 택했는가? 에 대한 의문이 있었다. 물론 그 날이 있었을 때 미카미 준이치는 이성친구였던 기노시타 유리와 함께 인근지역에 있었기 때문에 그 살인의 진범이 준이치였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했다. 그렇다고 해서 준이치가 기억상실에 걸리지 않은 이상 난고 쇼지의 제안에 응했을리도 없었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마지막 부분 진범의 정체가 드러나게 되면서 '원죄'가 풀려남과 동시에 과거가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던 10년 전 미카미 준이치에게 벌어진 사건을 보게 되는 순간 모든 퍼즐에 맞춰지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종국에 사건의 전말과 배후를 알게되었을 때 전혀 예상치 못한 고리가 연결되는 것이 마지막 페이지까지 좋았던 소설이었다.
이야기의 중간에는 사형제도를 중심으로 하는 일본의 사법체계에 대한 지적도 빠지지 않는다. 이를테면 조사원이 된 두 사람은 언제 사형당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지속적인 시간적 압박에 대한 언급을 한다. 사형이 집행되기 전까지의 13단계는 과정이 복잡할 수도 있지만 결국 사법부의 수장인 장관의 결재가 어느 시점에 이루어지느냐에 대한 문제이고, 이를 테면 정치적인 이유로 장관이 교체되기 전에 부담을 넘겨주지 않기 위해 일괄적으로 승인처리를 해버리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일견 사형제도라는 것은 사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다루어야 하면서도 실상 이루어지는 것은 정치적 영역에 겹쳐지는 복잡한 문제인 것이다. 또한, 사형은 형벌의 개념의 연장선상에서 보았을 때 교화목적인 것인지 자신이 저지는 범죄에 대한 일종의 복수목적인 것인지로 보았을 때, 비로소 난고가 사형집행을 하면서 느낀 그런 고뇌의 일면을 느껴볼 수 있을 것 같다. 누구보다 죽음에 가까이 있는 사람은 이를 더 절실히 깨달을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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