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육강식', '적자생존' 기나긴 생명의 역사 속에서 하나의 진리와도 같은 진화과정에서 저자는 그 생존경쟁에서 패배하였지만 도리어 살아남은 패자들에 주목한다. 비록 패배하였더라도 살아남은 이들의 생존전략은 다양하다는 것을 지구의 역사를 관통하며 설명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어떤 파트는 제목처럼 패자가 어떻게 진화해서 살아남았는지 충실하게 설명한 반면에 다른 부분은 시간의 흐름에 설명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포함된 점도 있어 보인다.
시간은 무려 22억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생명체가 탄생하는 시기 원핵생물에서 진핵생물로 바뀌어 가면서 핵 내에는 미토콘드리아 등 세포 내 소기관이 생기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이들은 경쟁에서 패배하여 흡수되었지만 그 속에서 하나의 기관으로 마치 '공생'하듯 살아나가며 '눈덩이 지구'라는 극한 환경 속에서 버텨낸다. 단세포에서 다세포로 생물이 진화한 과정은 이러한 공생과정에서 체득한 것으로 저자는 설명한다. 하나보단 여럿이 군집해서 다니는 것이 기본적으로 생존에 유리한 측면이 있기 때문에 외부와 맞닿은 세포들을 위해 내부에서 생존에 유리한 세포들은 양분을 전달해주는 방식으로 또다른 '공생'을 하게 된다.
세포가 세포분열을 해서 증식을 하게 되면 단순히 자신의 복제본을 계속 생산하는 셈이므로 지구 환경에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절멸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에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해 암, 수가 구분해는 생식과정으로 바뀌게 되었다. 수컷과 암컷이라는 그룹화를 통해 누구와 교환해야 하는지 명확하게 하기 위한 합리적인 방법인 것이다. 심지어 단세포 생물인 짚신벌레 역시 두 개체가 만나 유전자를 교환하는 방식으로 변화시키고자 한다. 반대로 그렇다면 그룹이 왜 세가지 이상이 아니냐는 질문에 저자는 그런 경우 각각의 그룹이 유전자를 골고루 교환하지 않는 경우 한쪽은 자연스럽게 수가 도태되는 과정이 발생하므로 최적으로 2개의 쌍이 남는 것으로 설명한다.
척추동물의 조상이라 할 수 있는 캄브리아시대 피카이아(Pikaia) 같은 생물은 단단하게 외골격을 발달시키는 대신에 척삭이라는 딱딱한 구조를 내부에 발달시켜 몸을 지탱하는 방식으로 진화하였다. 몸의 바깥쪽은 유연하나 척삭을 이용하여 빠르게 강한 생물로부터 도망치는 방식이었던 것이다. 이 척삭이 튼튼하게 변해 뼈가 되어 척추동물의 시대가 열리게 된 것이다. 그들이 육지로 올라온 과정도 '패자'의 입장에서 가혹한 자연환경에 스스로를 변화시킨 덕분이다. 바닷속은 상어나 앵무조개와 같은 포식자들이 있기 때문에 이를 피해 해수와 담수가 만나는 기수역까지 대피하게 되는데, 이 곳은 삼투압이 다르기 때문에 그에 맞추어 변화하게 된다. 하지만 이 곳에서도 강자와 약자 물고기는 나누어서 약자들은 신천지를 찾아 강 상류로 대피하게 된다. (직므의 연어나 송어 등이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행위가 이들이 담수를 기원으로 하는 이 때의 생존 전략이 깊숙히 박혀있기 때문이란다.) 이렇게 육지와 물이 만나는 지점으로 밀려남에 따라 이제 육상에서 활동할 수 있게 다리가 만들어져 진출을 하게되는 진화과정을 거두게 되는데 그 것이 바로 원시 양서류의 상륙 과정인 것이다.
우리의 조상인 포유류도 마찬가지다. 공룡의 시대에서 강력한 공룡과의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포유류는 소형화의 길을 택했다. 몸이 작으면 공룡이 닿지 않는 곳으로 도망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또한, 도망치기 위한 능력을 기르기 위해 감각기관을 발달시켰고, 이는 훗날 포유류가 번성하는데 무기가 되었다고 한다. 한 때는 웅크리고 있다가도 잘 버티고 있으면 언젠가는 햇볕이 들 날이 온다는 이야기가 딱 이런 것을 두고 얘기하나보다. 크기에 대해서 식물도 빠질 수가 없다. 식물은 처음에는 겉씨식물이었지만 속씨식물로 진화하게 되는 과정을 겪는다. 초기에는 더 많은 광합성을 위한 거대한 양치식물군이 지구를 뒤덮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식물의 생식과정에서 우위를 점하는 속씨식물이 비교적 작지만 살아남는 것처럼 말이다. 또, 하나 더 시사할만한 것들은 생명체의 빠른 진화를 위해서는 빨리 한 사이클이 돌아야 하기 때문에 오래 사는 나무들보다 1~2년 살고 죽는 풀들의 진화속도가 더 빠르다고 한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인류의 수명은 점점 연장시키는 것이 꿈인데 생명체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는 이 것이 오히려 인간의 진화를 더디게 만드는 이유이자 공룡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멸종했던 것처럼 인간을 비롯한 포유류도 어느 순간 같은 파국을 맞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아남기 위한 죽음이라니 속씨식물 중에서 낙엽수도 마찬가지이다. 잎사귀를 죽임으로써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서 양분을 축적하는 것이다. 죽음이라는 것 자체가 책에 나와있는 것처럼 생명을 유지시킨다는 커다란 관점에서 보았을 때는 그야말로 엄청난 발견이었던 것이다.
마지막에는 니치 전략이라는 것을 저자는 이야기 한다. 새로 들은 표현인데 '니치'라고 하는 것은 일종의 한 개체종이 생존하기 위한 보금자리(서식지) 같은 것이다. 만약에 이 니치에 두 종 이상이 중첩되게 된다면 어디 하나가 멸종하거나 이동할 때까지 다툼이 이어질 것이다. 그러나 패자들은 또 이 서식지 속에서 니치를 분리하여 그들의 삶을 영위하기도 한다. 포유류의 생존전략처럼 말이다. (이를 니치 시프트라고 부른다.) 자연에는 다양한 니치가 있고, 물 속에서의 삶에서 밀려나 육지로 올라왔듯이 포화된 육상에서의 니치를 피해 공중의 니치를 차지하고자 진화를 거듭한 패자들도 있다. 아예 지구 어디서든지의 니치가 없어진다면 이제 우리가 부르는 공중을 벗어나 우주까지 나아갈 수 있을까?
지금의 생명체가 있기 까지의 장구한 시간 속의 진화과정을 살펴보면서 늘 승자만이 생존했던 것은 아니었다. 공룡이 멸종했던 것이 그랬고, 결국 강한 사람이 생존하는 것이 아니라 생존하는 것이 강하다라는 것을 일깨워주는 읽기 좋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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