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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rt thought/From Book

세상은 실제로 어떻게 돌아가는가



 '숫자의 마술사'라고 불리기도 하는 환경과학자이자 연구사학자인 바츨라프 스밀이 지금 현 시점에서 이 세상에서 중요한 쟁점들을 파고드는 책을 내놓았다. 서문에서 언급했듯이 이 세계는 이제 너무나도 다분화되어 학술적으로도 서로 공유가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에 어느 하나의 사건에 대해서로 서로 다른 관점과 용어로 표현하려면 공유하기 어려운 시대이다. 이러한 세계에서 스밀은 나름 자신의 전문 분야와 맞닿은 세상의 작동원리들을 백과사전처럼 표현한 것 같다.

  바츨라프는 에너지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어 처음 문제제기를 역시 에너지로 시작한다. 그는 '에너지는 유일하게 진실한 세계통화임에도 불구하고 현대 경제학이 이를 거의 무시한 이유를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런 세상이 돌아가길 이해하려면 나름 에너지 리터러시가 필요하다고 지적헌다. 에너지의 특성을 이해해야만이 사회의 발전이 왜 이러한 방향으로 흘렀는지 이해할 수 있다는 뜻이다. 더군다나 2장에서 식량 생산을 소개할 때도 생산량은 화석연료의 사용과 직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말한다. 농기구를 만드는데서부터 현대 농업에서 빠질 수 없는 합성 질소비료를 만드는데 화석 연료는 필수불가결적 요소이기 때문이다. (스밀이 논지를 강화하기 위한 각종 에너지 지표 및 사용량을 제시하는 것들이 한 눈에 들어오지는 않더라도 꽤 흥미로웠다. 예를 들어, 580g의 제빵용 밀가루를 얻기 위해서는 800g의 통밀이 필요하며, 이를 통밀 생산에 드는 디젤유가 양 80ml이다 혹은 식용 닭고기의 에너지 부담을 계산할 때 사료와 식용육의 비율이 3:1 정도여서 1kg 닭 한마리 키우는데 드는 옥수수가 3kg이다. 끝에서 그는 통닭의 가격이 빵 평균 가격보다 약 25퍼센트 정도만 높기 때문에 주된 식용육의 위치에 올라섰고, 반면에 토마토 등이 오히려 낮은 에너지 효율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한다. - 재배를 위한 비닐하우스 설치 등으로 인해..)

  3장에서 그는 현대세계를 떠받치는 네 기둥: 시멘트, 강철, 플라스틱, 암모니아를 소개한다. 그런데 이 네 물질을 대량생산하는 것도 화석연료의 영향은 절대적이다.  화석연료는 이토록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렇지만 저자는 최근 이슈화되고 있는 '탈탄소화'에 대해서 짚어보는데, 그가 하고 싶은 주장은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화력 발전을 그렇게나 사용하고 있는데 갑작스럽게 이를 순배출 제로화 (탄소중립) 로 에너지 전환을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지적한다. 에너지 저장 및 친환경에너지 효율 개발 등 에너지 전환 문제가 난관에 맞닥뜨릴 경우 감소 추세에 있는 원자력발전으로 나아가는 것이 해결책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근래 서구권 국가들이 정책적으로 원자력 에너지를 친환경 에너지로 포함시키는 것과 연관지어 보자.) 급진적인 탈탄소화 정책은 화석 연료와 강한 상관관계가 있는 식량 생산에도 악영향을 줄 수 밖에 없다. 특히 질소화합물을 사용하지 못한다면 농업 생산량은 급감하여 지금의 인구의 절반 정도 수준으로 회귀한다고 한다.

  그는 식량 문제에 있어서 식량의 복잡한 유통과정에서 발생하는 음식물쓰레기 문제 (바이오매스?)를 효율적을 접근한다던지, 에너지 효율이 좋지 않은 육류의 섭취를 줄이는 방법을 언급했지만 현재로서는 가능성이 없는 방안들인 것 같다.

  뒤에서 그는 환경문제를 다룬다. 주로 지구온난화에 대한 내용이며 이에 대한 갑론을박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추세적으로 보았을 때 200여년간 화석연료의 사용이 급증함에 따라 지구의 환경 변화는 실재한다고 주장한다. 다만, 이를 생존에 위험한 수준이냐라고 물었을 때, 식량생산, 산소의 농도, 물의 공급의 범주로 나누어서 볼 때 근시일에는 위험한 상황이 아니라고 진단하였다. 그러나, 화석연료에 지속적으로 의존해야하는 현실에서 지구온난화 현상은 장기화되고  어느 순간에는 그 임계점을 넘을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지구온난화'나 '탈탄소화', '탄소중립'이라는 용어에 매몰되어 현실불가능한 담론을 주장하는 것보다는 현실적인 대응방안(지속적인 효율성 개선, 나은 시스템 설계, 소비 절제 등)을 고민해야할 때라고 말한다. 특히, 1장에서 이야기 하고있는 '탈탄소화'를 위한 2050년까지의  급진적인 에너지 전환은 허황된 꿈이라는 것이다. 이를테면 매스컴 등에서 새로운 위험에 대해서 제기하고 부풀리게 된다면 사람들은 이 위험의 출현에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는데 이는 과거의 '산성비', '오존층 파괴', 심지어 '미세먼지' 등으로 군중의 위험 인식이 변화해 왔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미세먼지 농도에 대해서 예민하게 반응하면서 과거에 대머리가 될 수 있다고 피해야 한다는 산성비에 대해서는 더이상 크게 신경쓰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해수면 상승으로 국토가 상실될 위기에 처해있는 남태평양의 섬나라들도 연구를 해보니 투발루의 국토면적은 오히려 3% 증가했다는 이야기 등을 보면 보여지는 것 이면의 실체를 이해한다는 것이 어려운 것임을 짐작케 한다. 코로나 팬더믹이 아무 예고도 없이 찾아왔듯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가 갑작스레 닥쳐왔듯 지구 상의 위기는 늘 있어왔고 혼란은 있었지만 비관론자들이 예측하는 멸망의 순간은 다가오지 않았다.
  
  다만, 저자가 말한 것처럼 현실적인 대응방안을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이지만 국가의 이익과 번영을 위해서 총의를 모으기는 어렵게만 느껴진다. 아무리 지구 상의 강대국들이 온실가스 배출 감축에 합의를 한다고 한들 아시아, 아프리카의 개발도상국들에게는 자기들의 발전의 기회를 뺏는 것처럼 느껴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탄소발자국을 줄이는 것이 필요하지만 어느 때보다 요원해보이는 현재의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