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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명관 작가의 '고래'라는 소설은 몇 커뮤니티에서 끊임없이 읽어볼만한 소설로 추천을 받아왔었다. 한동안 추리소설을 탐독하다가 도서관에 신간으로 들어와있길래 연유를 보니 국제 도서상에 후보작으로 올라와서 다시 재조명받는 중이었다. 헌 책의 독특한 냄새를 맡으며 읽는 재미도 있지만 신간이 아무래도 좋지 않은가 싶은 마음에 바로 대여를 하여 읽었다.
이야기는 춘희가 교도소에서 출소하여 맨발로 터벅터벅 철길을 따라 자신이 있던 벽돌공장으로 돌아가는 모습에서부터 시작된다. 총 3부로 나뉘어져 있어, 1부와 2부에서는 노파와 금복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3부에서는 금복의 딸이자 반편이인 춘희가 중심이 되어 서사가 진행된다.
소설을 읽어보면 이렇게 파란만장한 삶이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각 주인공의 흥망성쇠를 잘 담아내었다. (물론 춘희는 노파나 금복에 비해서는 고생한 기억이 더 길긴 하지만) 이 소설은 뒤에 나와있는 심사평처럼 '한 편의 복수극'을 다루는 것이기도 하다. 맨처음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노처녀(노파)는 대갓집의 반편이와 정을 나눴지만, 이를 알게된 주인집 마님에 의해 쫓겨난다. 노파는 반편이를 꼬드겨 개울가에서 죽이고 딸아이를 낳지만, 그녀를 애꾸로 만들어버리고 벌치기에 벌 2통에 팔아버린다. 애꾸가 된 딸은 이후 돌아와 노파를 죽이는 것이 바로 첫번째 복수극이다. 다음에는 노파가 숨겨놓은 재산을 우연찮게 얻어내 부귀영화를 누리는 금복에게 노파와 애꾸가 나타나 저주를 걸고 금복의 꿈이 들어있는 고래 영화관이 불타며 기어코 파멸시키는 것이 바로 두 번째 복수극인 셈이다. 이 속에서 금복의 욕망의 일부분에 의해 탄생하였던 춘희는 파멸의 결과로 교도소에 수감되어 비참한 삶을 살게 된다. 장군의 특별사면으로 출소하게된 춘희는 보금자리와도 같았지만 잊혀진 평대에서 더욱 황량하게 버려진 벽돌공장에서 남은 인생을 살아간다. 노파의 딸 애꾸는 마지막까지 등장한다. 3부에서 춘희가 사충에 의해 생명이 위험한 때 등장하여 그녀가 사용하는 벌을 이용하여 춘희를 살려주는데 이로써 복수의 관계가 더이상 남아있지 않음을 암시하는 것 같았다.
또다른 작품평에서처럼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체 '노파-금복-춘희'가 모두 여성이라는 점도 특기할만 하다. 그럼에도 금복이 부귀영화의 끝에서 선택했던 것이 여성으로서의 삶이 아니라 남성으로서의 삶이었던 점은 사회적인 진출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겉포장이 허울뿐인 삶 속에서 금복은 결국 무너져버린다.
왜 작품의 제목은 '고래'였을까? 소설 내에서는 여러 상징물들이 등장한다. 쌍둥이자매와 서커스를 하기도 했으며 춘희와 정신적인 교감을 나누기도 했던 '점보' 코끼리도 있었고, 노파와 금복이 보여준 욕망에 완전히 대치되는 순수한 '개망초' 등도 생각해볼 수 있지만, '고래'라는 것은 산골소녀 금복이 태어난 곳을 떠나 처음 바닷마을에 도착하고 마주친 고래의 압도적인 이미지와 이를 잊지 못하고 이를 형상화하여 영화관으로 지은 것을 보면, 사람이 아무리 욕망해도 넘어설 수 없는 대자연의 무언가를 상징하는 것 같아 작품의 이름이 고래가 되었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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