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즈키 시게루는 요괴를 전문적으로 그려온 오랜 만화가이다. 하지만, 내가 이 작가를 처음 접하게 된 것은 도서관에 꽂혀있던 만화 '전원 옥쇄하라!'라는 책이었다. 이 분은 2차 세계대전 때 태평양 전쟁에 징병되어 라바울에 투입되었고 그 곳에서 일본의 항복소식을 들은 인물이기도 했다. 그의 체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 이 만화였던 것인데 몸소 전쟁을 겪어본 사람으로서 당시 군국주의가 만연하던 시기 일본군의 왜곡한 정신과 전쟁의 참상을 꼬집었던 책으로 기억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라바울 전기'라는 책도 쓰셨는데 아무래도 만화가라서 그런지 복잡한 텍스트보다 편하면서도 진중한 의미로 다가오는 것들이었다.
1988, 1989년 작가가 출간한 일본 현대사 세트는 앞선 책들에 뛰어넘어 그가 살아온 삶의 궤적과 일본의 모습을 잘 꿰어 표현한 작품이었다. 많은 시대를 한 번에 다뤄야 했으니 4권이라는 두꺼운(?) 책이었지만 시간 내서 머리 식힐 때 읽기에는 최고였다. 책을 읽으며 흥미있던 것은 일본에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 보다는 작가 본인의 삶을 풀어쓰는 부분이 참 신기했다. 어쩌면 집안에서 속썩이는 아들처럼 있다가 오사카의 미술학교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본인의 재능을 찾기 시작한 그는 전후 종이연극을 거쳐 잡지에 만화를 게재하면서부터 그만의 화풍을 갖게 된다. '요괴탐구'도 그 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했던 것 같다. 하지만, 요괴에 대한 얘기는 이 책의 주된 요소가 아니다. 오히려 내가 관심 있게 본 내용은 라바울에서 말라리아에 걸려 후송 중에 있다가 미군의 폭격으로 인해 왼쪽 팔이 절단되고, 제대로 수술도 받지 못한 상태로 생사의 기로에 놓인 즈음이다. 전쟁이라는 것은 사회나 과학기술의 발전을 촉진시키지만 이는 수많은 인간의 희생, 죽음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죽음의 냄새가 가까운 남태평양 전선에서 왼팔이 잘려 죽을 지경에 있는 작가는 아기의 냄새를 맡으며 왼팔에서 생명의 기운을 얻어 다시금 회복하였다. 게다가 그 시기 만난 남태평양 원주민들과의 (톨라이족이라고 한다.) 인연. 2권 쯤에 그들과의 첫 조우를 지나 4권에서 속칭 '남쪽나라병'에 걸려 그들과의 추억을 잊지 못하고 다시 찾아가는 작가의 모습. 그리고 원주민들도 작가를 잊지 않고 다시 반겨주는 모습에서 어떠한 인간적인 느낌을 강하게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시대 순으로 일본에서 벌어진 사건들과 본인의 삶을 오며가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렇다고 일본에서 벌어진 사건들의 절반정도는 대표적인 사건들을 다루었지만 그가 관심을 가지고 기억하는 범죄사건이라던지 문화적인 내용 등도 어쩌면 일본의 일면을 표현한 것 같아서 참신해보였다.
시간을 들여 읽어볼만한 좋은 책이었다.
'Short thought > From Book'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상은 실제로 어떻게 돌아가는가 (0) | 2023.06.19 |
---|---|
고래: 삼대에 이은 삶의 발자취 (0) | 2023.06.19 |
어쩌면 당신이 원했던 패전사 이야기: 유튜브만큼 따라주지 않은 컨텐츠 (0) | 2023.06.13 |
테스카틀리포카: 아즈테크 공양과 장기밀매 (0) | 2023.06.13 |
동트기 힘든 긴밤: 중국 미스터리소설 추천 / 쯔진천 (0) | 2023.06.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