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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에서 외국 연구자가 발표한 '역신뢰 (reverse credibility) 의 역설'이라는 것을 언급한다. 이는 어떤 대상이 가지고 있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오히려 그 대상에 관련한 내용에 신뢰를 주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명망이 높고 학술적으로 뛰어난 사람의 말을 우리가 신뢰하고 배우는 것처럼 '악명'을 가진 어떠한 존재에 관련한 내용에 대해서 그 존재가 옳은 일을 하였을 때는 절대로 믿지 않고, 그릇된 행위를 하였을 때는 '그럼 그렇지'하고 믿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고 보면 된다. 이러한 역설을 바탕으로 저자는 잘못된 정보로 괴담이 만들어지고 역사가 된다는 것을 경계하며, 사례를 통해 잘못된 역사를 고친다고 주장한다.
오랜 역사에 잘못된 내용 또는 유홍준을 비롯한 몇몇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에 대한 반박이 주 내용이다. 그가 주장하는 사례를 아래 정리해보자면,
1. 청와대 위치가 예로부터 내려오는 천하명당지 ('천하제일복지'라는 비석으로 인해 주장되어온)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위의 비석도 흥선대원군 시절 중앙권력을 강화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
2. 조선이 풍수지리에 근거하여 설계되었다는 것은 낭설이다. 특히 유홍준 씨가 말한 도봉-북악-관악 라인에 맞게 경복궁과 육조거리가 생겨났다는 것은 지도 상으로도 맞지 않음.
3. 광화문 앞에 오래 전부터 월대가 있었다는 것은 허구이며, 고종 때 만들어져 일제에 들어서 사라진 단 57년만 존재했던 것이다. 게다가 그 월대의 목적은 백성과 소통했던 공간이 아닌 권력 표현에 일환일 뿐이었다.
4. 현 미군기지 내에 있는 비석의 기단이 조선 왕실이 천제를 올리던 '남단'의 일부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 흔적은 일제강점기 용산 지역에 병영이 들어서고 야포대대가 주둔하는데 당시 야포를 이끌던 군마들을 추모하기 위한 비석이 불과함.
5. 현재 조성해놓은 아관파천 시 고종이 달아났다는 '고종의 길'은 허무맹랑한 근거에 기반해있다. 그 위치 또한 당시 외국 공사관들 간의 통행을 위한 닫힌 공간일 뿐이었다.
6. 남대문이 '국보 1호'라는 명칭을 잃은 것은 서울대에 다니던 일본인 유학생의 석사 논문에 호도된 일본 잔재 지우기에 불과하다. 어차피 숫자는 일제강점기 때부터 내려오던 관리번호에 불과하였을 뿐이며, 임진왜란 당시 고니시 유키나가나 가토 기요마사가 통과했던 문이어서 남겨둔 목적이 있지는 않았다. 오히려 교통 통행이 불편하여 없애려는 시도가 있었음.
7. 조선총독부가 민족정기를 없애기 위해 경희궁을 없앴다고 하는데 1900년에 이미 궁궐은 남아나 있질 않았고 뽕밭일 뿐이었다. 심지어 경복궁 중건시 경희궁의 자재를 가져다 사용하였음.
8. 원나라에 우리가 강제로 부마국이 된 것이 아니라 고려 왕실의 적극적인 요청 (당시 원종)에 의해 부마국에 지위에 오르게 되었음.
9. 베트남 호치민이 '목민심서'를 머리에 두고 읽었다는 것은 완전 거짓된 내용
10. 유홍준이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 적은 추사 김정희의 일화 (해남 대흥사에 이광사가 쓴 현판을 떼라고 했다는 내용)는 사실무근이다.
11. 선조가 류성룡의 반대로 명나라 망명을 단념한 것이 아니라 선조는 끊임없이 명나라로 내조할 생각이었으며 결국 포기하게 된 것은 명나라가 망명을 거부하고 병력을 지원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12. 정조 시절 청나라를 다녀온 학자들에 의해 실학이 생겨났던 시기여서 이 때 정조가 학문을 부흥시켰던 왕으로 생각할 수 있는데 실제로는 청나라로부터 들여오는 모든 학문적 경로를 차단하였으며, 병오소회와 문체반정으로 서학을 완전히 철폐시켜버린 학문 암흑기의 장본인이다.
13. 12와 연계하여 실학은 조선시대 내내 기를 펴지 못한다. 조선의 멸망과 조선을 지탱하던 성리학의 반대급부로 일제강점기 시절 조선을 연구하는 학자들에 의해 부흥하게 된 것이 실학이었을 뿐이다.
14. 최익현 의병장이 대마도에서 굻어 자결을 하였던 것은 사실이 아니다. 실제로는 3일 정도 단식투쟁을 하였으며, 사망한 원인은 풍토병에 의해서다.
15. 이건 이미 전반적으로 알려져 고쳐진 내용인데, 헤이그밀사였던 이준이 원하던 성과를 내지 못하자 비통한 마음에 할복자살을 하였다는 대한매일신보의 거짓뉴스가 한동안 그대로 믿어졌던 내용을 다룬다. 물론 이는 바로잡히게 되고, 할복이 아닌 분사로 역사는 바뀐다.
16. 나라는 잃었지만 왕실은 그대로 남았다. 고종의 이토 히로부미를 향한 믿음은 상당했다. 을사오적의 강권에 의해 나라가 빼앗겼다기 보다는 유약한 고종에 의해 나라가 팔렸다고 보는 것이 합당하다는 내용. (덧붙여 이토 히로부미에 의해 몇 차례 고종과 금전거래도 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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