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Short thought/From Book

삐뚤어진 리더들의 전쟁사2

앞 글 내용은 아래 링크로.

2023.01.19 - [Short thought/From Book] - 삐뚤어진 리더들의 전쟁사1

 

4. 정치꾼

  - 클라우제비츠가 남긴 명언, '전쟁은 정치의 연속이다'라는 말은 결국 전쟁도 정치에 포함된다는 내용으로, 

    역사적으로 전쟁에서 명성을 얻는 사람들은 정치적으로 성공을 거두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아래 3명은 전쟁을 이용하여 정치적 자본으로 삼으려던 야욕에 눈이 멀어 결국 군사적으로 실패했던 사람의 이야기다.

 

  -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로마의 '1차 삼두정치'를 열었던 사람 중의 한 명으로,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 마그누스의 클레오파트라의 이야기까지 뒤섞인 대립에 밀려나 그다지 관심에 없었던 인물이기도 하다. '스파르타쿠스'로 잘 알려진 노예반란을 성공적으로 토벌하여 로마 정치에서 이름을 날리던 크라수스는 앞서 언급한 2사람과 원로원을 제치고 서로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삼두정치를 결성하게 된다. 그러나 오직 권력은 한 사람에게만 돌아가는 법. 경쟁자로서 잘 나가고 있던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를 군사적으로 능가하기 위해서 크라수스는 파르티아 원정에 나서게 된다. 크라수스는 정치에는 능한 귀족이었지만 군사적 식견은 전혀 없던 상태에서 파르티아와의 전투에서 대패하고, 자신도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된다. 

 

  - 니키아스

  아테네의 유력 정치인 니키아스는 알키비아데스의 등장과 여론에 등떠밀려 시라쿠사 원정을 시도하게 된다. 니키아스는 대규모 병력을 시라쿠사로 보냈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시간만 보내다가 시라쿠사를 지원하는 스파르타 군에서 해군력을 상실하고 섬 내에서 피해다니다가 결국 박살나게 된다. 니키아스의 정치력으로 충분히 처음 주장했었던 시라쿠사 원정 반대를 고수할 수도 있었다. 그의 정치력을 유지하기 위해 여론에 휩쓸려 저지른 실책이 결국 그의 발목을 잡은 셈이다. 

 

  - 레몽6세

  툴루즈의 영주였던 레몽 6세는 당시 해서는 안될 교황청을 적대하는 행위를 함으로써 정치적, 군사적 위기를 초래하고 만다. 파문당한 레몽 6세는 그의 영지를 십자군에 의해 빼앗기기도 한다. 그러면서 레몽은 교회 무시와 십자군 지지를 오가는 무능함을 보여줌과 동시에 이복동생 볼드윈을 죽여버리기까지 하는 '카인'과 같은 비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그는 영지를 지키기 위한 어떠한 리더십도 보여주지 못한 인물이었다. 

크라수스, 니키아스, 레몽 6세

 

5. 덜렁이

   - 아래 3명은 사람이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실수이지만 중요한 전쟁에서 무능력하게 실수를 저질러 큰 이득을 볼 수 있는 것을 놓치고 대실패를 거두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다. 

 

   - 노기 마레스케

     노기 장군은 러일전쟁 뤼순전투에서 승리하면서 러일전쟁을 승리로 이끈 영웅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노기 장군의 신화로 '닥치고 돌격'하면 된다는 일본의 잘못된 군인관이 생겨나게되었고, 어린 시절 그를 영웅으로 흠모하던 자들이 노기와 같은 자리에 앉아 태평양전쟁을 벌였고, 일본은 패망하게 되었다. 

   이런 이야기를 차치하고서라도 노기 장군의 신화가 얼마나 잘못 이용되었는지 책은 말해주고 있다. 당시 일본이 뤼순을 점령하고자 했던 이유는 뤼순항에 정박하고 있는 러시아 함대를 무력화 내지 격멸하기 위함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에서 준비된 요새에 돌격 (심지어 눈에 띄게 흰 옷을 입고 돌격하기도 하였음) 하여 대량의 인명살상을 내었다. 도저히 이러한 피해를 지켜볼 수 없었던 오야마 총사령관은 고다마 총참모장을 보내 마지막 4차 총공세를 통해 지리했던 뤼순 공방전을 마칠 수 있었다. 물론 노기 장군은 훌륭한 인격을 가지고 있었고 많은 부하들의 존경을 받던 덕장이었다. 하지만 전투가 끝나고 발생한 사상자 수를 들은 노기는 그 전투에서 자신의 두 아들을 잃은 것만큼 충격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그의 무능함을 감춰준 것은 다름아닌 그의 부하였던 것이다. 

 

   - 로마누스 4세

     로마누스 4세는 비잔틴제국의 황제로서 '만지케르트 전투'에서 셀주크 투르크에 대패하여 소아시아에서의 영향력을 완전히 잃어버리게 한 장본인이다. 물론 당시 비잔틴제국의 위세는 점차 사그러들고, 투르크 민족이 점점 발흥하던 시기였기에 그들의 침략은 빈번해왔다. 로마누스는 군인 출신으로 황제에 오른 자였고 각종 국내 문제로 낮은 인기를 가지고 있었기에 이를 뒤집기 위해 전쟁을 준비하였다. 반면 셀주크는 변방을 계속 침탈하긴 하였으나 완전히 동로마 제국을 멸망시킬 생각은 없었기에 공격하러 온 로마누스의 군대에 평화협정을 제안하기도 한다. 로마누스는 본인이 전력 상 열세이라는 사실은 생각지도 못한채 마지막 기회였던 협정을 거부하고 만지케르트에서 일전을 벌이나 패배할 수 밖에 없었다. 

 

   - 가넷 울슬리

  울슬리 역시 대영제국 육군에서 명성이 높던 장군이었다. 그가 보였던 우수한 점도 있었지만 수단이 마흐디스트들에 의해 위협을 밖에 되자 하르툼으로 보낸 찰스 고든 소장을 결국 구출해내지 못했던 점에서 말년에 보였던 실책을 이 책은 조명한다. 그의 성공은 강력했던 제국육군의 전투력을 빌어 약한 적들을 대상으로 쟁취해온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터라 수단에서 발생한 마흐디즘 세력을 심각하게 과소평가하였고 무리한 작전 진행은 더 큰 실패를 불러올 수 밖에 없었다. 

노기, 로마누스 4세, 울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