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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rt thought/From Book

임용한의 중동전쟁: 기나긴 전쟁과 아픔의 역사

'토크멘터리 전쟁사'로 익숙한 임용한 박사의 중동전쟁 책을 읽었다.

한 때는 제국이었던 영국은 세계 곳곳에 분쟁의 씨앗을 뿌린 국가로 유명한데,

유대인들과 아랍, 그리고 동맹국들에게 한 이중,삼중 약속으로 중동지역을 화약고로 만들어버렸다.

그래도 2차세계대전 간 히틀러가 유태인들에게 저지른 만행의 기록은 

유태인들의 시오니즘 운동을 일부 용인하게 되는 국제사회의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고

이는 반대로 팔레스타인인들에게는 재앙과도 같은 사건이었다.

 

이스라엘이 건국을 선언함과 동시에 이를 가만히 두고만 볼 수 없었던 아랍은 연합하여 동시공격,

'1차 중동전쟁'의 시작을 알린다. 건국이 된 상태에서 준비가 부족했던 그 때야 말로 아랍은 전투력에

우위를 가지고 있었을 수 있었고 이스라엘을 다시 지도 상에 없앨 수 있었던 기회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랍군의 무형적 전투력은 생각보다 상당히 부실했으며, 초반의 위기를 넘긴 이스라엘에

속속들이 들어오는 애국심에 불타는 젊은이들과 무기들로 하여금 국가를 지켜낼 수 있었다.

동시에 최초 분할 시 조각조각 나뉘어졌던 이스라엘의 영토를 확충하여 팔레스타인은 가자지구와 

웨스트뱅크의 작은 지역에서만 있을 수 밖에 없게 되었다. 

 

'2차 중동전쟁'은 이집트에서 나세르가 집권하게 되면서 구체화된다.

수에즈운하 국유화를 선언한 것에 자극받은 프랑스와 영국은 미국의 반대에도 이스라엘과 함께

이집트를 공격하고 운하를 점령한다. 전투에서 대승을 거둔 것은 3개국이었으나, 결국 전쟁에서 이득을

본 것은 나세르였다. 국제사회는 이제 미국-소련 중심의 냉전구도였고, 프랑스와 영국의 좁은 입지는

이집트에 손을 들어주었고 나세르는 엄청한 국내 인기를 받는 대통령이 되고 만다.

 

'3차 중동전쟁'은 예방전쟁의 대표 사례로 '6일 전쟁'이라고 부르는 전쟁이기도 하다. 

이집트의 국내 상황은 점점 안좋아지고 있었고, 나세르는 이를 타개할 방법으로 다시 한번 전쟁하려는 의지를

보이게 된다. 이스라엘의 정보부는 이러한 주변 아랍국가들의 동향을 파악하였고, 먼저 선제타격을 통해 적의

전쟁의지를 없애겠다는 판단을 하게 된다. 신속한 공중장악을 바탕으로 이집트-요르단-시리아를 순차적으로 

박살 낸 이스라엘은 국토의 종심이 좁다는 점을 오히여 빠른 외선작전이 가능하다는 장점으로 상쇄시켰다. 

 

'4차 중동전쟁'은 방심한 이스라엘에 대한 사다트의 대답과 같았다. 이스라엘이 수에즈 운하를 따라 축조한 

바레브 방벽을 창의적인 방법으로 돌파를 하여 초기 성취를 거두었다. 하지만 잠시의 우세는 이스라엘의 빠른

동원능력으로 오히려 재역습을 당하게 되었고 결국 마지막까지 이스라엘의 군사적 우세로 전쟁은 마감하게 된다

여기서 눈여겨볼만한 점은 작전지속지원의 중요성이었다. 동일 규모의 전차가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면,

이스라엘은 그중의 8할은 다시 정비를 해서 사용할 수 있었지만,

이집트군의 경우는 1~2할을 걷도는 수준이었다고 한다.

이러한 차이는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커지는 전력차를 낳았을 것이다

그리고 사다트는 전쟁이 끝나고 난 다음 '내가 왜 아랍을 위해 희생을 해야하는가?'라는 실질적인 물음에 도달한다.

아랍의 스타가 되고 싶었던 나세르와는 다른 현실적인 행보였었고

더이상의 전쟁은 이집트던 이스라엘이던지 공멸을 낳을 것이라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이는 결국 '캠프 데이비드 협정'으로 양측의 평화가 이루어지는 결과를 낳았다.

그러나, 이집트와의 국경은 안정화된 반면 다른 곳에서는 아직도 꼬여버린 실타래를 풀어낼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네 번의 걸쳐진 중동전쟁을 살펴보면, 전쟁의 명분은 그럴듯해보였지만,

첫번째 독립을 위한 전쟁을 제외하고는 그 뒤에 외교, 정치, 경제적인 부차 목적들이 생각보다 커보였다. 

거기에 중동전쟁을 대표하는 이집트, 이스라엘의 군인과 정치가들의 개인적인 야욕도 함께 결부되어

지금까지도 이스라엘 주변에는 포격, 총성.. 그리고 여러 죽음이 끊이지 않게 되었다.

한 편으로는 미-소 대립의 대리전 양상으로 펼쳐지기도 한 중동전쟁은 국제적인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도 있다.

미국과 소련은 서로 자극은 하고 싶지만 결전을 하는 수준까지는 갈 마음이 없었고,

간 보는 수준으로 다른 나라에 무기지원이나 군사고문을 통해 상대방의 수준을 파악하는 정도였다. 

아프리카, 아시아 국가들은 이러한 양 진영의 대립을 이용하여 국가이익을 얻으려고 하였다. 

 

임용한 박사는 중동전쟁 책의 부제를 '전쟁이 끝나면 정치가 시작된다'라고 하였다.

4차례의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모두 전술적으로 승리를 거두었지만,

어떤 순간에는 그에 걸맞는 성과를 획득하기도 하였지만,

냉전 구도 속에서 아무 것도 얻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게다가 전쟁 중에도 미국과 소련이 전쟁을 중단 (휴전 요청)시키기 전에 완료해야 한다는 압박감도 있기도 했다.

이런 점에서 전쟁은 단순히 전투력의 우세로 국가가 승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외교, 경제 등 국가의 모든 요소를 활용하여야 한다는 것이며,

모든 전쟁은 결국 명분이 명확해야만이 국제 사회의 인정을 받게 되고

전쟁에서 얻은 성과 또한 국제사회의 지지가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